세상 공부

무능하거나 위선이거나 (어수웅 부장,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1. 23. 15:22



무능하거나 위선이거나


조선일보
                         
      
입력 2019.11.23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지난주 개봉해 반짝 흥행 1위를 한 영화가 있습니다. '블랙머니'.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의 한국 외환은행 인수와 매각 사건을 다룹니다.
주지하다시피 사모펀드의 '먹튀'와
론스타의 한국 정부 제소(ISD·투자자와 국가 간 직접소송제도)라는 맞불은 현재 진행형이죠.

영화는 조진웅이라는 배우에게 의협심 강한 검사 역할을 맡깁니다.
이후에는 명쾌한 선악 이분법이자 카타르시스의 향연이죠.

영화 속 악당은 상위 1% 경제 엘리트.
이미 수퍼 리치인데도 더 배를 불리기 위해 해외 펀드와 손잡고 서류와 회계를 조작합니다.
검사 조진웅을 제외하면 영화 속 검찰 조직도 전부 썩었죠.
하지만 조진웅의 쾌도난마가 끝나고 극장을 나섰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크린의 배설 쾌감은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불평등과 빈부 격차의 진짜 원인을 영화는 부지불식간에 은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선악 이분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유감이지만 현실에서는 다들 자신만의 진실이 있고,
양면적·포괄적 접근 없이는 어림 반 푼어치의 해결도 없으니까요.
'정의'를 외칠 때 1대99 구도를 선호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상위 1%는 착취자, 나머지 99%는 피해자.

하지만 최근의 모든 연구와 실증적 자료들은 1대99보다 10대90 혹은 20대80이 더 문제적이라고 증언합니다. 새 경고등이 켜진 지는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국 사태' 이후에야 새삼 경각심을 가진 듯합니다.
최고 부자나 부패한 보수야 원래 그러려니 했지만,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는 소위 진보 세력까지 그럴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들을 강남 좌파로 부르건, 진보 엘리트라 부르건, 명칭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인턴이건 표창장이건 장학금이건,

자기 자녀들의 추락을 막으려고 '유리 바닥'을 깔고 기회를 사재기했다는 것이 관건이죠.

청년 시절 자신을 희생했다고 주장한 86학번 세대가

어느덧 정치와 경제 권력까지 틀어쥔 2019년의 풍경입니다.

지금은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시대입니다.

1대99는 과거의 프레임.

바뀐 시대의 새로운 과제는 새로운 세대에게 풀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도 철 지난 앵무새가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무능하거나 위선이거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2/201911220232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