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유럽 전쟁' 개입 않겠다며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 결성
오바마는 '뒤에서 리드한다', 트럼프는 '뒤에서 빠지겠다' 차이뿐
자유·민주 가치 공유 없는 미국 일방주의, 중국보다 매력 있지 않아
◇소련이 헝가리혁명·프라하의 봄·폴란드 자유 노조 짓밟아도 미국 개입 안 해
유럽이 2차 대전에 휩싸인 1940년
이후 역대 미 행정부는 글로벌 전쟁의 참화를 막고 해외 위협으로부터 미국인의 삶을 지키기 위해
'미국인의 삶 보호'라는 해외 개입의 원칙이 깨진 것은
1991년 냉전(冷戰)이 끝나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 체제가 되고
아들 부시 대통령 때 9·11 테러로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하면서였다.
'미국 예외주의(exceptionalism)'라는 사명감에 젖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들이
미국의 뜻대로 전 세계를 바꾸기 위해 급격히 군사력 사용을 확대했다.
동시에 미 유권자들의 해외 개입 피로감도 높아갔다.
"뒤에서 리드한다(leading from behind)"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독트린은 이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로 수많은 자국민을 살해했을 때에도 크루즈 미사일 한 방 쏘지 않았다. 미 대선이 있었던 2016년 5월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지지 정당에 상관없이 미국 유권자들의 70%가 미국의 해외 개입 축소를 원했다.
트럼프의 승리는 이런 분위기의 산물(産物)이었다.
작년 7월 트럼프는 "인구 60만명의 나토(NATO) 회원국인 몬테네그로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았다고,
왜 (나토 조약에 따라) 우리 아들이 그 나라를 지키러 가야 하느냐"는 뉴스 앵커의 질문에
"나도 같은 생각"이라며
"그들이 러시아에 호전적이 되면 우리가 3차 대전에 뛰어들게 된다니"라고 맞장구를 쳤다.
미 애틀랜틱 몬슬리는 파리 기후협약 불참이든 이란 핵 합의 파기든, TPP 거부든
밑바탕엔 "젠장, 우리는 미국이잖아"란 생각이 담겼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그래도 된다'는 예외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세계는 엉망이어도 미국은 안전할 수 있다"는 환상
오랜 동맹국과도 철저히 득실(得失)을 따져 거래하고
일방적으로 '뒤에서 빠지겠다(leaving from behind)'는 지금의 미 외교 노선은
트럼프 이후에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엔 몇 가지 치명적 오류가 있다.
뉴욕의 외교협의회(CFR) 회장인 리처드 하스는
"현재 미국 국방비는 외교, 정보수집, 핵무기 유지비를 포함해 8000억달러이지만,
GDP 대비 비중은 냉전 때(근 10%)에 훨씬 못 미치는 3~4%이며,
이를 통해 막은 실현되지 않은 재앙은 측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또 사이버 공격이나 교묘한 선거 개입, 지구온난화 등의 문제엔 거리나 국경이 없다.
미국 외교 노선이 좀 더 현실적이 되더라도,
그 근본이 '일방적' '동맹국 착취'라면 나라들의 산법(算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해인 남중국해를 제멋대로 군사화하고는
"중국은 큰 나라이고, 당신들은 작은 나라"(2010년 양제츠 당시 중국 외교부장)라는 중국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공유되 지 않는 세계에서 미국은 중국보다 더 매력적이지도 않다.
"세계는 엉망이어도, 미국은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케이건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관리하지 않으면 잡초와 덩굴이 압도해 버리는 정원과 같다"고 했다.
2차 대전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왜 그걸 지키려고 죽겠느냐"고 했던,
자치도시 단치히(그단스크)에 대한 독일의 함포 사격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