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1.04 03:13
['형사사건 공개 금지'는 정당한가… 문재완 한국헌법학회 회장]
"수사기관 입 닫으면 오히려 부정확한 추측 보도로 인권침해 늘어
'피의사실 공표죄'는 우리나라에만 있어… 실효성 없고 違憲 소지
美경찰, 피의자 체포하면 얼굴 사진 찍어 혐의 사실과 함께 공개
범죄 저질렀으면 사회 공적 영역으로 나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
"국민이 관심 있는 사안이면 신문은 쓸 수밖에 없다. 조국씨가 갑자기 검찰청에 출두하면 언론은 그가 무슨 혐의를 받고 있는지 보도해야 한다.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사기관이 입을 닫으면 오히려 부정확한 추측·왜곡 보도가 늘어날 것이다. 피의자의 인권을 정말 위한다면 적절하게 수사 상황을 브리핑해야 하는 것이다."
문재완(58) 한국헌법학회 회장은 언론법에 정통한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법조담당기자로 일했고 미국에 유학해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논문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년 전에는 '피의사실 공표죄의 헌법적 검토'라는 논쟁적 논문을 발표했다.
그를 만난 것은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다다음 날이었다. 인권 보호를 위해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을 비공개하고, 오보(誤報) 언론의 검찰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조치였다.
―세상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사는 아니겠지만, 이번 조치는 피의자 인권과 언론 자유, 국민 알 권리 등 헌법 가치와 관계돼 있다. 그런데 법무부가 내부 지침인 훈령(訓令)으로 이를 결정해버렸다. 조국 사태에 올라타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이뤄졌는데?
"민주주의 원칙 훼손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을 기습 작전 하듯 처리했다. 피의자 인권도 보호돼야 하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누가 무슨 혐의로 체포됐고 수사권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언론은 감시할 의무도 있다."
―법무부는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 공표죄'에 근거해 원칙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했지만 이제는 법대로 공개 금지 하겠다는 것인데?
"피의사실 공표죄는 1953년 입법됐다. 하지만 66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기소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법적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 특유의 형벌 조항이다. 지금 와서 이를 다시 꺼낸 것은 정치적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피의 사실 흘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곤 했지만, 이 혐의로 기소된 사례가 없다는 건가?
"피의사실 공표죄의 적용 대상은 수사기관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이 있고 나서 검경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건수는 늘었지만 한 번도 기소된 적은 없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것인데?
"그런 측면이 있지만, 피의사실 공표죄가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내재적 한계 때문이다."
―그러면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왜 '피의사실 공표죄' 조항을 집어넣었나?
"그때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전연 죄도 없는 사람이 죄 있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인권이 많이 유린당하고 있는 불행…' '한번 신문이나 소문이 퍼진 뒤에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지 못하는 결과가 나서 피해자의 처지는 대단히 곤란…'이라는 발언이 있다.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는 옳지 않나?
"문제는 그런 입법 목적이 피의사실 공표죄로 안 이뤄진다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다고 해서 언론이 안 쓰고 세상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까. 1953년 입법 당시에는 주요 몇 개 신문사와 라디오만 통제하면 얼마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인터넷·유튜브까지 떠들어대는 요즘 세상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환경에서 전면 공개 금지하겠다는 것은 반시대적 언론 압박이다."
―1953년 당시 형법을 만들 때 일본 형법을 많이 참고했을 것이다. 일본 쪽도 이런가?
"일본 군국주의 시절 수사기관 통제를 위해 그 조항을 담은 초안(草案)이 있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현행 일본 형법에는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사람의 범죄 행위에 관한 사실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 사유로 되어 있다. 우리와 정반대다. 미국·유럽 등에서도 '피의사실 공표죄'나 이와 유사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공판 검사의 발언이 공정한 재판에 상당한 편견을 끼칠 때만 문제 삼는다."
그를 만난 것은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다다음 날이었다. 인권 보호를 위해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을 비공개하고, 오보(誤報) 언론의 검찰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조치였다.
―세상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사는 아니겠지만, 이번 조치는 피의자 인권과 언론 자유, 국민 알 권리 등 헌법 가치와 관계돼 있다. 그런데 법무부가 내부 지침인 훈령(訓令)으로 이를 결정해버렸다. 조국 사태에 올라타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이뤄졌는데?
"민주주의 원칙 훼손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을 기습 작전 하듯 처리했다. 피의자 인권도 보호돼야 하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누가 무슨 혐의로 체포됐고 수사권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언론은 감시할 의무도 있다."
―법무부는 형법 제126조 '피의사실 공표죄'에 근거해 원칙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했지만 이제는 법대로 공개 금지 하겠다는 것인데?
"피의사실 공표죄는 1953년 입법됐다. 하지만 66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기소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법적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 없는 우리 특유의 형벌 조항이다. 지금 와서 이를 다시 꺼낸 것은 정치적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피의 사실 흘리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곤 했지만, 이 혐의로 기소된 사례가 없다는 건가?
"피의사실 공표죄의 적용 대상은 수사기관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이 있고 나서 검경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한 건수는 늘었지만 한 번도 기소된 적은 없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를 한 것인데?
"그런 측면이 있지만, 피의사실 공표죄가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는 내재적 한계 때문이다."
―그러면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왜 '피의사실 공표죄' 조항을 집어넣었나?
"그때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전연 죄도 없는 사람이 죄 있는 사람이라며 이렇게 인권이 많이 유린당하고 있는 불행…' '한번 신문이나 소문이 퍼진 뒤에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지 못하는 결과가 나서 피해자의 처지는 대단히 곤란…'이라는 발언이 있다.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었다."
―확정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는 옳지 않나?
"문제는 그런 입법 목적이 피의사실 공표죄로 안 이뤄진다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다고 해서 언론이 안 쓰고 세상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까. 1953년 입법 당시에는 주요 몇 개 신문사와 라디오만 통제하면 얼마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인터넷·유튜브까지 떠들어대는 요즘 세상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환경에서 전면 공개 금지하겠다는 것은 반시대적 언론 압박이다."
―1953년 당시 형법을 만들 때 일본 형법을 많이 참고했을 것이다. 일본 쪽도 이런가?
"일본 군국주의 시절 수사기관 통제를 위해 그 조항을 담은 초안(草案)이 있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현행 일본 형법에는 '공소가 제기되지 않은 사람의 범죄 행위에 관한 사실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되지 않는 사유로 되어 있다. 우리와 정반대다. 미국·유럽 등에서도 '피의사실 공표죄'나 이와 유사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공판 검사의 발언이 공정한 재판에 상당한 편견을 끼칠 때만 문제 삼는다."
―죄를 범했으면 법에 정해진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는 법정 형벌 이전에 더 견디기 어려운 '여론 형벌'을 부과한다. 극단적 사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고 갔던 셈인데?
"참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죄가 있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형사사건 공개 금지'를 하면 밀실 수사와 추측 보도가 이뤄져 오히려 피의자의 인권이나 공정한 재판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동안은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게 해놓았는데?
"피의사실 공표죄에는 '위법성 조각 사유(위법이 안 되는 예외 사유)'가 없다. 다만 법무부의 '수사 공보준칙'을 통해 예외 조항을 뒀다. 사실 이게 위법이다. 법으로 안 되는 예외를 훈령에서 둘 수가 없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준 검찰 브리핑은 사실 모두 법 위반이었다. 피의사실 공표죄를 개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나는 이 법 조항 자체가 위헌이라고 본다."
―왜 '위헌'이라고 보는가?
"한쪽에 피의자 인권이 있으면, 다른 쪽에는 언론 자유와 국민 알 권리가 있다. 양쪽 가치가 비례 원칙으로 적용돼야 한다. 가치 충돌이 안 되게 조화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죄는 한쪽 가치만 대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헌으로 보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죄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피의사실을 흘리려는 행태를 억제하는 측면이 있지 않겠나?
"그런 수사 관계자는 내부 감찰로 징계하거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수 있다. 피의자의 인권침해 여부는 수사 상황 브리핑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브리핑하는 검찰에게 '당사자는 뭐라고 답변했는가?'라며 질문해야 한다. 언론은 비례 균형에 맞게 피의자의 반론을 실어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피의자 개인의 말보다 공권력인 수사기관의 말을 믿는다. 현실적으로 비례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언론이 피의사실을 보도하면 세상 사람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원상회복이 안 된다.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는 것은 '무죄 추정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
"피의자가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의 보도는 그 원칙에 위반되는 게 아니다. 무죄 추정 원칙이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는 혐의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무죄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피의자를 수사하겠나. 다만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해 유죄 인정 효과로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언론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단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오래전부터 검찰발(發) 기사가 아닌 법원발 공판 기사를 써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 왔다. 검찰에서 배포한 수사 자료나 브리핑에 의존하면 피의자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 관행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기사 경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도 사건이 법원에 넘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걸 원치 않는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탄핵과 관련된 범죄 혐의가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지 않나. 모두 피의사실이다."
―현 정권 사람들은 이번 조국 사태에서 언론의 의혹 제기를 '가짜 뉴스'로 공격했다. 언론은 진실을 추구해야지 의혹 제기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론관도 이런 것 같다. 하지만 근거 있는 의혹 제기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 아닌가?
"악의적이거나 아무 근거가 없으면 책임져야 하지만 현저히 상당성이 있으면 보도해야 한다. 의혹 제기는 언론의 역할이다. 이를 '가짜 뉴스'로 공격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이번 법무부 훈령에는 오보를 낸 언론은 검찰 출입을 제한한다는 규정이 있다. 취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면 명백히 오보인지 아닌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런 조치는 아무 법적 근거 없이 훈령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언론은 보도 전에 확인 취재를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언론에 사실 입증 의무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검찰은 인권 개선 조치로 '공개 소환 금지'를 내놓았다. 검찰에 출두하는 공인들이 멈춰서야 했던 '포토라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나라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습과 법제가 다르지만, 미국 경찰은 피의자를 체포하면 얼굴 사진인 '머그샷(mug shot)'을 찍고, 웹페이지에 혐의 사실과 함께 공개해버린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사회 공적 영역으로 나왔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 신문도 범인 얼굴을 공개했다됐다. . 그 뒤 피의자 인권을 위해 미공개가 원칙이 경찰은 아주 예외적으로 잔혹한 범죄자의 얼굴은 공개하는데?
"사인(私人)이면 미공개이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거나 중대한 사건이라면 국민 알 권리가 있다고 본다. 공인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게 옳다고 본다. 우리나라 신문처럼 익명·가명을 남발하는 외국 사례는 찾기 어렵다. 2002년 대법원은 '공적 사안에서는 명예나 인권 보호보다 알 권리가 더 크다'고 판결했다."
―정경심 교수가 검찰 출두할 때 TV 방송들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본지는 실물 사진을 공개했다. 그녀를 공인으로 볼 수 있나?
"공인(公人)의 아내는 공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다 공직자 남편(조국)과 관계된 사안에 적극 연루돼 있어 얼굴 공개를 해야 한다고 본다."
"참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죄가 있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형사사건 공개 금지'를 하면 밀실 수사와 추측 보도가 이뤄져 오히려 피의자의 인권이나 공정한 재판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동안은 국민 알 권리를 위해 예외적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게 해놓았는데?
"피의사실 공표죄에는 '위법성 조각 사유(위법이 안 되는 예외 사유)'가 없다. 다만 법무부의 '수사 공보준칙'을 통해 예외 조항을 뒀다. 사실 이게 위법이다. 법으로 안 되는 예외를 훈령에서 둘 수가 없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준 검찰 브리핑은 사실 모두 법 위반이었다. 피의사실 공표죄를 개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나는 이 법 조항 자체가 위헌이라고 본다."
―왜 '위헌'이라고 보는가?
"한쪽에 피의자 인권이 있으면, 다른 쪽에는 언론 자유와 국민 알 권리가 있다. 양쪽 가치가 비례 원칙으로 적용돼야 한다. 가치 충돌이 안 되게 조화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죄는 한쪽 가치만 대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위헌으로 보는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죄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피의사실을 흘리려는 행태를 억제하는 측면이 있지 않겠나?
"그런 수사 관계자는 내부 감찰로 징계하거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수 있다. 피의자의 인권침해 여부는 수사 상황 브리핑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브리핑하는 검찰에게 '당사자는 뭐라고 답변했는가?'라며 질문해야 한다. 언론은 비례 균형에 맞게 피의자의 반론을 실어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피의자 개인의 말보다 공권력인 수사기관의 말을 믿는다. 현실적으로 비례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언론이 피의사실을 보도하면 세상 사람들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나중에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원상회복이 안 된다. 피의사실 공표를 허용하는 것은 '무죄 추정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가?
"피의자가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의 보도는 그 원칙에 위반되는 게 아니다. 무죄 추정 원칙이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는 혐의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무죄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피의자를 수사하겠나. 다만 피의자를 범인으로 단정해 유죄 인정 효과로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언론 보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단정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오래전부터 검찰발(發) 기사가 아닌 법원발 공판 기사를 써야 한다는 논의가 있어 왔다. 검찰에서 배포한 수사 자료나 브리핑에 의존하면 피의자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 관행은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기사 경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도 사건이 법원에 넘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걸 원치 않는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탄핵과 관련된 범죄 혐의가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지 않나. 모두 피의사실이다."
―현 정권 사람들은 이번 조국 사태에서 언론의 의혹 제기를 '가짜 뉴스'로 공격했다. 언론은 진실을 추구해야지 의혹 제기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언론관도 이런 것 같다. 하지만 근거 있는 의혹 제기는 언론의 중요한 역할 아닌가?
"악의적이거나 아무 근거가 없으면 책임져야 하지만 현저히 상당성이 있으면 보도해야 한다. 의혹 제기는 언론의 역할이다. 이를 '가짜 뉴스'로 공격하는 것은 다른 정치적 의도 때문이다."
―이번 법무부 훈령에는 오보를 낸 언론은 검찰 출입을 제한한다는 규정이 있다. 취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면 명백히 오보인지 아닌지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런 조치는 아무 법적 근거 없이 훈령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언론은 보도 전에 확인 취재를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언론에 사실 입증 의무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검찰은 인권 개선 조치로 '공개 소환 금지'를 내놓았다. 검찰에 출두하는 공인들이 멈춰서야 했던 '포토라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나라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습과 법제가 다르지만, 미국 경찰은 피의자를 체포하면 얼굴 사진인 '머그샷(mug shot)'을 찍고, 웹페이지에 혐의 사실과 함께 공개해버린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사회 공적 영역으로 나왔고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과거 우리 신문도 범인 얼굴을 공개했다됐다. . 그 뒤 피의자 인권을 위해 미공개가 원칙이 경찰은 아주 예외적으로 잔혹한 범죄자의 얼굴은 공개하는데?
"사인(私人)이면 미공개이지만, 사회적 관심이 높거나 중대한 사건이라면 국민 알 권리가 있다고 본다. 공인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게 옳다고 본다. 우리나라 신문처럼 익명·가명을 남발하는 외국 사례는 찾기 어렵다. 2002년 대법원은 '공적 사안에서는 명예나 인권 보호보다 알 권리가 더 크다'고 판결했다."
―정경심 교수가 검찰 출두할 때 TV 방송들은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본지는 실물 사진을 공개했다. 그녀를 공인으로 볼 수 있나?
"공인(公人)의 아내는 공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 교수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다 공직자 남편(조국)과 관계된 사안에 적극 연루돼 있어 얼굴 공개를 해야 한다고 본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