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교육 90% 망가져… 정직한 자기 평가 시급"
"한 권 쓰는 데 5년, 손으로… 글 잘 쓰려면 행복해야"
"아베, 독일의 빌리 브란트처럼 무릎 못 꿇을 것"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미국의 공교육 엉망입니다. 90%의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어요."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누구도 표나게 편들지 않으면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82세의 세계적인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가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망원경과 현미경을 수시로 오가는 깊은 갈색 눈. 그 눈으로 오대양 육대주 국가의 흥망성쇠를 단번에 들여다보며 이야기했다. 실리콘밸리부터 뉴기니까지… 문명의 붕괴와 추락, 극복과 성장의 빅 히스토리가 순식간에 그 안에 줌인 줌아웃 됐다.
과학자이면서 역사가이자 언어학자이면서 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 한 인간 안에 이토록 많은 학문의 체계가 엉키지 않고 들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 그가 쓴 문명 탐사기 ‘총 균 쇠'는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유발 하라리는 ‘총 균 쇠'의 영향을 받아 ‘사피엔스'를 써냈다.
이번 방한의 목적은 6년 만의 신작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이하 대변동)’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대변동'은 7개 국가의 위기를 비교한 다이내믹한 역사서지만, 한편으론 ‘위기란 무엇인가'를 다룬 심리학이나 자기계발도서로도 읽혔다. 그만큼 다이아몬드 교수 특유의 유려한 이야기체가 돋보인다.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가 다르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찬란한 실패담으로 서막을 연다.
"스물한 살이었을 때 나는 학자로서 혹독한 위기를 겪었다… 1959년 6월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생물리학회에 참석한 후 내 사기는 더욱 꺾였다…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쓸개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를 포기할까 고민한 사람이 세계 역사에 또 있겠는가…"
얼굴 윤곽이 하얀 털로 덮인 인자한 노교수가 이집트 상형문자가 그려진 20년 된 넥타이를 매고 왔다. 링컨 대통령을 닮았다고 하자 "존경하는 리더"라며 흐믓해했다. 그는 현재도 UCLA에서 학부생들에게 지리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은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인터뷰 도중 위층에서 피아노곡 라보엠이 들려오자, 잠시 말을 멈추고 음악을 감상했다.
"제 아버지는 러시아에 지배를 받던 루마니아 북동쪽 나라 ‘몰도바' 출신입니다. 미국에 이민 오면서 그 관문인 엘리스 아일랜드 이민국을 통과했지요. 아버지의 성은 ‘스피릿(spirit)'을 뜻하는 ‘뒤마인’이었는데, 이민국 직원이 ‘다이아몬드?' 하더니 그렇게 적어버렸답니다. 졸지에 다이아몬드 가문이 시작된 거지요(웃음)."
-저는 사실 ‘대변동'의 사려 깊은 기술 방식과 그 아름다운 문장에 매료됐어요. ‘다이아몬드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첫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마이클 셔머(과학 저널 ‘스켑틱' 편집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친절한 이야기꾼이 되기로 한 것은 선생의 의도인가요?
"(환하게 웃으며)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쓰는 훈련이 돼 있었어요. 어머니가 언어학 교수였기 때문에 3살 때부터 가르침을 받았지요. 재미있고 명료하게 쓰도록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쓰지요?
"컴퓨터로는 못 씁니다(웃음).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인 샤프(누르면 심이 나오다니요!)로 써요. 여기 이 노란 종이에. 제가 쓴 걸 읽고 녹음하면 비서가 그걸 타이핑하죠. 책 한 권을 쓰는 데 평균 5년~7년 정도 걸립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노동으로 ‘총균쇠’ ‘문명의 붕괴' ‘어제까지의 세계' ‘대변동' 같은 문명사의 역작이 완성됐다는 게 놀라웠다. 지식 세계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어떻게 발견되고 채굴되는 것일까.
-일곱 국가의 위기를 분석한 최근작 ‘대변동’의 스토리는 2016년에 출간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라는 책의 챕터4에 얼마간 소개돼 있더군요.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장에서요. 모든 지식 콘텐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사전에 설계합니까?
"미리 계획하지 않아요. 이전 책을 쓰다가 머리에 깊이 남는 걸 본격적으로 다루지요. 문명 붕괴의 문제는 20살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한 책에서 충분치 다루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다음 책으로 넘어가는 편입니다. 지금은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파고 있어요."
"맞습니다. 저는 거시적 역사를 기술할 때도 개인을 매우 중요시해요. 읽는 사람이 자기 일처럼 느낄 수 있도록 자전적 경험을 녹여냅니다. 국가 위기를 분석하기 위해서, 저는 어린 시절 겪었던 ‘보스턴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부터 이야기했어요. 그 사건은 많은 미국인에게 충격이었고 긴급 심리 치료 기법이 도입된 전환점이었어요. 개인과 국가의 위기는 많은 점에서 유사해요. 청년 시절 겪은 나의 학문적 위기나 중년 시절 겪은 이혼의 위기도 그렇습니다. 여러 사건을 비교해서 복안의 눈으로 보면 시야가 놀랍도록 넓어지지요."
-그렇다 해도 쓸개에서 시작해 조류를 거쳐 인류까지, 학문적 여정이 넓어지고 있는 광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미소지으며)달라 보여도 공통점이 있어요. 내가 연구한 모든 학문의 중심엔 비교가 있어요. 나는 케임브리지에서 쓸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실험실 과학은 무조건 A실험군과 B대조군을 비교해서 계량적으로 입증합니다. 하지만 새를 연구하기 위해 뉴기니로 갔을 땐 환경을 통제할 수 없더군요. 천적을 없앨 수도 없고 그건 또 비윤리적인 행위거든요. 그래서 어떤 새가 번성한 곳과 멸종한 곳의 환경을 비교 연구했어요.
그 뒤 새 관찰에서 배운 자연관찰법을 역사에 응용했습니다. 가령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를 비교했더니 지리적 요인이 컸어요. 대체로 온대 국가의 반도국이 열대 국가나 내륙국가보다 부유합니다. 문명사회 이후 제도라는 변수를 무시할 수 없더군요. 한국과 북한은 같은 나라지만 분단 이후 경제 발전에서 극적인 차이를 드러냈어요. 그건 다른 제도 때문이었어요. 여하튼 특이점은 제가 쓸개와 새의 방법론인 비교를 문명과 역사에 적용했다는 거죠(웃음)."
"맞습니다(웃음). 저는 지난 60년간 여섯 개의 언어를 쓰며 여러 나라에서 살았어요. 독일, 칠레, 호주, 인도네시아, 핀란드… 신기한 건 내가 가는 나라마다 위기를 겪었다는 겁니다. 깜짝 놀랐어요. 혹시 내가 위기인가(웃음)? 찬찬히 따져보니 사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위기를 겪고 있더군요. 그 시점에 임상 심리치료사인 아내가 영감을 줬어요. 아내는 이혼, 질병 등 극심한 삶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개인을 상담하면서 몇 가지 회복 요법을 씁니다. 그 기법을 국가 위기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는 책에서 위기 극복의 핵심 요인을 12가지로 제시했다. 위기 인정, 책임 수용, 해결할 것과 놓아둘 것 정하기, 외부에서 도움받기, 좋은 본보기 찾기, 자아 강도, 정직한 자기 평가, 인내 등등.
내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치료를 받고, 나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결의 책임을 맡게 된다. 뼈아프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과 능력에 대한 정직한 자기 평가도 필요하다. 국가도 마찬가지. 예컨대 위기를 벗어나는 데 개인의 자아 강도와 자존감이 중요하듯, 한 국가의 국민성과 정체성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소련의 공격으로 혹독한 겨울 전쟁(1939년)을 치른 핀란드와 서구의 압력으로 문호를 개방한 메이지 시대 일본이 이 절차에 따라 적절하게 위기에 대응했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서구의 신무기와 기술을 신속하게 받아들여 강대국 대열에 섰고, 핀란드는 모든 동맹국으로부터 버림받고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인구가 40배나 많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외교를 탄탄히 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따르면 위기는 갑자기 오는 것도 아니며 오랫동안 쌓인 압력이 폭발할 때 닥친다. 갈등이 누적된 부부는 이혼하기 마련이고,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이 축적되면 쿠데타가 일어난다. 통상 개인은 평생 서너 번 정도, 국가는 수 세기 간격으로 위기를 맞는다.
"다 중요하지만 일단은 첫 과정부터 밟아야겠지요. 스텝1 위기 인정, 스텝2 책임 수용, 스텝3 당장 고칠 것 정하기. 하지만 국가에 따라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은 있어요. 메이지유신 시대 일본은 12가지 중 ‘본보기 찾기’를 잘했어요. 신문물을 받아들일 때 군대, 해운, 교육 분야에 맞게 미국과 유럽에서 각국의 가장 좋은 기술과 제도만 쏙쏙 뽑아 받아들였죠. 미국도 지금 그런 본보기 국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에서 무엇을 배우려들까요?
"물론 미국은 위기를 인정하지 않아요. 정직한 자기 평가가 시급합니다. 자세를 더 낮춰 부유한 민주주의 서방국에서 배워야 해요. 캐나다에서는 이민 정책을,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에서 선진 정치를. 특히 공교육 부문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배워야죠. 미국 공교육은 최악입니다."
-미셸 오바마 자서전 ‘비커밍'에서 봤습니다. 빈곤 지역의 공교육이 심각하더군요.
"최고 교육기관인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 프린스턴 등은 매우 훌륭합니다. 초중고 시스템은 달라요. 좋은 학교는 10% 정도고, 90%는 거의 버려진 학교입니다. 일본과 한국은 초중고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서비스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인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거든요(웃음).
"하지만 한국은 교사의 지위도 연봉도 높은 편이지요. 우수한 학생들이 교사가 되려고 경쟁하지 않습니까? 미국은 우수한 학생은 교사를 지망하지 않아요. 교사 연봉도 매우 낮죠. 미국의 망가진 공교육 시스템과 비교하면 한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당면한 한국의 가장 큰 위기는 무어라고 보십니까?
"국경을 이웃한 북한이지요."
-책에서 소련과 대결했던 핀란드가 남 일 같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배울 점이 있을까요?
"핀란드는 독특한 언어와 건축 양식을 지닌 작은 국가예요.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소련과 싸워 독립을 지켜냈지요. 그 뒤 혹독한 자기 평가를 거쳤고, 전쟁을 막기 위해 국경을 맞댄 러시아의 예민한 비위를 맞춰갔습니다. 핀란드인들은 내각의 관리, 하위 공무원까지 러시아와 적극적인 대화를 해나갔습니다.
최전선의 실무진부터 먼저 러시아에 속내를 터놓았고, 두 나라 사이엔 의심이 없어졌죠. 한국도 다르지 않아요. 북한이라는 위기를 넘기려면 아래에서부터 대화해야죠. 요란한 선전은 중요하지 않아요. 만날 때마다 떠드는 건, 그만큼 대화가 없다는 거죠. 실무진부터 자주, 터놓고 만나는 게 평화를 위한 외교의 전부예요."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이념 대립은 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은 물론 영국, 호주, 이탈리아도 심각하더군요. 심화한 불평등과 그로 인한 좌우 갈등은 전 세계적인 문제예요. 이럴 때 리더는 국가 정체성을 중심으로 좌우를 단합시켜야 합니다. 당신들은 한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문자를 만든 민족 아닙니까? 36년이라는 일제 식민지를 겪고도 경제 대국을 이뤄낸 민족이지요. 차이보다 그런 저력과 정체성을 강조하면 좌우 갈등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일본과 한국 관계도 날이 서 있습니다. 해법이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예요. 일단 폴란드와 독일을 봅시다. 제 아내가 폴란드계 미국인이라 그들의 마음을 좀 압니다(웃음). 오랫동안 독일 지도자들은 과거 나치의 행위를 형식적으로만 사과했어요. 그런데 1970년 겨울 기적이 일어났어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나치 피해자 위령탑 앞에서 들고 있던 대본을 던져버리고, 무릎을 꿇었어요.
자신들의 얼마나 잘못했고, 그 일에 대해 얼마나 미안해하는지를 고백한 거죠. 브란트 총리의 진심 어린 사과에 폴란드인의 마음이 움직였어요. 그 뒤 폴란드와 독일의 관계는 회복됐습니다. 독일은 지금도 자국 어린이들에게 강제수용소와 생존 유대인의 이야기를 듣도록 교육하고 있어요. "
-얼마 전 만난 슈뢰더 전 총리도 같은 말을 하더군요. 독일과 일본은 2차 대전 전범 국가지만, 도덕적 위상을 세운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비교됩니다. 혹 아베 총리를 만난다면 그 부분에 대해 조언하시겠습니까?
"할 수는 있지만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웃음). 독일과 일본은 문화적인 차이가 큰 편이지요."
-그런 면에서 독일은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리더의 ‘지적인 낙관주의'와 ‘인내’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준 놀라운 국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습니다. 어떤 면에서 독일과 미국은 양극단의 다른 국가예요.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위험이 거의 없어요. 반면 독일은 15개가 넘는 접경지대에, 프랑스, 러시아 등은 물론 바다 건너 영국과도 긴장이 있지요. 지정학적으로 한국과 비슷하면서 강대국 때문에 운신의 폭도 좁아요.
다행히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리더가 다 훌륭했어요. 빌리 브란트, 슈뢰더, 메르켈까지. 만약 일본의 리더도 빌리 브란트처럼 난징 대학살 현장에서, 한국의 종전 피해자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다면 일본의 지위는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대개의 리더는 장기적 안목보다 당장의 이익과 다음 선거에만 목을 매죠. 안타깝지만 최근의 미국 대통령도 그의 직위가 부의 수단이 되고 있어요. 과거를 돌아보면 트루먼 대통령(1945년~1953년)은 책상 위에 우표도 두 종류로 구분했어요. 하나는 공식 서한, 하나는 개인용 우편물. 퇴임 후엔 기사도 없이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리더의 스타일은 그 나라의 전통과도 관련이 있어요. 싱가포르 정치인은 청렴하기로 유명하죠. 공직자에 대한 대우가 좋아 부패 유혹이 적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반면 트럼프는 딸과 사위까지 축재로 악명이 높아요(웃음)."
-문득 궁금합니다. 현재는 급속히 변하고 있는데 선생의 방식대로 ‘과거에서 배운다’는 방법이 정말 유익할까요?
"과거는 느리고 현재는 빠른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과거나 현재나 비슷합니다. 비슷한 골칫거리를 안고 살지요. 종교를 맹신하고 이기적이며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있어요. 우리가 프랑스에서 4만 년 전에 그려진 동굴 벽화를 이해하는 건 그 시대 사람들과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아서예요. 과거는 좀 더 일찍 온 현재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찾아 헤매다 결국 뉴기니의 전통 사회에서 그 답을 찾았다는 책 ‘어제까지의 세계(2013년)'가 떠오르네요. 뉴기니에서 조류학자로 살았던 경험이 선생의 삶에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는 모양입니다.
"맞아요. 나는 지금도 18개월마다 한 번씩 뉴기니에 가요. 뉴기니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새를 관찰합니다. 그곳엔 흥미로운 새와 열대 우림이 가득해요. 뉴기니 사람들은 우정을 중요시해요. 휴대폰도 라디오도 없지만, 얼굴을 보고 대화하죠. 필요한 물건은 다 만들어서 씁니다. 무엇보다 현대인들은 뉴기니 사람들이 위험에 대처하는 법이나 자녀 양육법을 배웠으면 해요. 나는 50살에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뉴기니에서 배운 데로 키웠죠(웃음)."
-뉴기니 스타일의 양육법이란 어떤 형태죠?
"아이들에게 숨 쉴 틈을 주는 거죠. 자유를 주고 놓아 키웠어요. 요즘 미국 부모들도 중국식 타이거 맘, 헬리콥터 맘이 많아요. 부모들은 시간 스케줄을 짜고 아이 매니저로 살고 있어요. 저는 뉴기니 스타일대로 최대한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했어요.
그랬더니 큰아들 맥스는 3살 때 뱀과 사랑에 빠졌죠. 한 마리씩 집에 들이더니 나중엔 개구리, 도마뱀, 거북이까지 147마리가 집에 함께 살았어요(웃음). 그 아이는 요리를 좋아해서 요리 학교를 나왔어요. 요리사가 될 줄 알았더니 32살에 환경문제를 연구하겠다며 과학대학원에 진학하더군요."
"인류는 전화기, 자동차가 없던 지난 수만 년 동안에도 똑같은 걱정을 해왔어요. AI시대도 분명 같은 걱정을 하며 살아갈 겁니다. 양육 스타일도 그래요. 과거엔 체벌이 당연시됐지만, 지금은 금지됐죠. 비스마르크의 명언을 기억하세요. "한 세대가 금지한 것을 다음 세대는 허용할 것이다." 방법론은 세대마다 왔다 갔다 할 겁니다.
스마트폰도 그래요. 세계를 연결했지만 직접 소통을 줄여서 사회성 결여 문제가 생겼어요. 일본의 결혼율이 급감한 것도 직접 소통력이 부족한 성인들이 양산됐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걱정거리는 과거로의 회귀를 촉구합니다. 결국 원초적인 삶에서 인간은 크게 변할 수 없을 겁니다."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으셨어요. 그 책은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간 책으로 유명한데, 얼마 전 저는 한 홈리스의 쉼터에서도 그 책을 봤습니다. ‘총 균 쇠'가 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까지 문명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인 시선을 교정해줬지요. 유럽의 백인이 이 세계를 지배한 건 두뇌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단지 환경적으로 그들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요. 지리적인 이점으로 농경, 가축화가 가능했고, 그 확장이 무기, 병균, 금속이라는 문명의 도구를 낳았죠. 빌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 등 지도자들도 ‘총 균 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하하. 언제나 비교는 나의 힘이지요. 저는 정말 독특한 학문 배경을 가졌어요. 실험실 생리학자로 매일 실험군과 대조군을 비교하다, 지리학과 역사학으로 이동한 경우는 전 세계 유례가 없을 겁니다."
-비교하면 개인의 위기도 지혜롭게 풀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위기 상황에서는 항상 비교해야 해요.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죠. 비슷한 처지의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세요. 지금의 아내 마리와 결혼 전에 나는 이혼의 아픔을 겪었어요. 당시에 친구 5명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미 깨진 친구, 회복된 친구, 위기를 겪고 있는 친구. 그들을 통해 여러 샘플을 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학문적 위기는 없었습니까?
"1959년에 생리학을 그만두고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했어요(웃음). 책에 썼듯이 6개월만 더 노력해보고 결정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지요. 1980년에 케임브리지에서 실험실 기전 연구를 계속하려 했지만, 쓸개에서 장기 전체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2002년 하버드 의대에서 지리학으로 자리를 옮길 때도 위기였죠. 그때마다 도움을 줬던 게 바로 1959년에 겪었던 첫 위기였어요. 과거의 내가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떠올리면 자신감이 생겼거든요(웃음)."
-유발 하라리, 스티븐 핑커와는 좋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나요?
"하라리는 ‘총 균 쇠'에서 ‘사피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더군요(웃음). 국제 대회 패널로 자주 만납니다. 스티븐 핑커와는 그의 미국 동부의 별장에서 부부와 함께 휴가를 보내곤 하죠."
-그들이 영감을 주기도 합니까?
"아니요. 나에겐 주제 그 자체가 영감입니다. 오히려 LA 협곡에서 새들을 관찰하면서 배우죠(웃음)."
-여러 문명을 통찰한 빅 히스토리의 대가로 선생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합니까?
""세계는 다 글렀어!"라고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되죠. 저는 ‘문명의 붕괴'를 쓰고 이어서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를 썼어요. 지금 32살인 나의 쌍둥이 아들들이 살아갈 2050년을 기대하면서요.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더 나아지길 바라서죠. 비록 부정적인 요소가 있어도 우리는 낙관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붕괴할 수도 있으니 이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역사에서 배워야죠. 우리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웃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21세기의 다윈이다,라는 평가에 동의하나요?
"아니요.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했고 발전시켰어요. 저와 공통점이 있다면 특정 문제를 깊이 연구했고, 그걸 책으로 잘 풀어냈다는 것뿐. 과학자가 대중을 위해 친절하게 서술하는 건 중요합니다."
"첫째 데이터를 취합해서 쉽고 간략하게 정리해야 해요. 둘째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야죠. 셋째 에너지가 많고 우울증이 없고 건강하며 저녁이 행복해야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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