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10.31 03:00
춘추전국시대에 묵자라는 사상가가 있었다.
그는 모두가 부국강병과 무한 경쟁을 주장하던 난세에
'겸애(兼愛)', 즉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고 전쟁을 반대한 이상주의자였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이가 묵자 사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선생님의 주장이 아름답긴 하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선생님의 주장이 아름답긴 하지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북방의 제나라나 진나라, 남쪽의 초나라나 월나라는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넓히고 국력 역시 강성해졌습니다.
그러니 침략 전쟁을 반대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 나라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통해 더 큰 이익을 얻은 것이 아닙니까?"
매우 상식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무한 경쟁을 하는 시대에 사랑과 평화만 외치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다.
하지만 묵자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묵자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전쟁을 약이라고 비유해서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에는 몇 천 개에 달하는 나라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서로 전쟁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 4개의 나라만 이익을 얻고
그 밖의 몇 천 개 나라와 백성들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는 마치 내가 의사이고 약을 처방했는데
약을 먹은 1만 명의 사람 중 단 4명만 병이 나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병이 깊어지거나 심지어 죽어나가죠.
이 약을 좋은 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한 경쟁을 찬양하고 부국강병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사물의 한쪽 측면만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에겐 승리한 사람의 영광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공정하게 살펴보면 승리한 사람은 극소수다.
99%의 사람들은 무한 경쟁의 패배자일 수밖에 없다.
이건 결코 대다수가 어리석고 무가치해서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99%의 패배자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무한 경쟁의 본질이다.
따라서 1%를 제외한 99%가 패배자가 되는 시스템은 수많은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셈이다.
사실이 이렇다면
비현실적인 주장을 일삼는 자들은 평화를 외치는 묵자가 아니라, 무한 경쟁의 신봉자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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