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고 세종대왕이 만든 같은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북한에서 조선글 날은 푸대접받고 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서울 광화문에 앉아 있는 동상의 주인공이 세종대왕인지도 몰랐다.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도 잘 이해가 안 됐다.
북한에는 김씨 부자 동상만 있지 우리 민족을 빛낸 위인들 동상은 없다.
역사 교과서에 얼핏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사실은 가르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이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면 김씨 일가의 업적에 손상이 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대신 김일성이 우리 말과 글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야만적인 식민지 정책을 감행한 일제를 때려 부숴
잃을 뻔했던 우리의 말과 글을 찾아주었다고 선전한다.
또 김정일은 우리 말과 글이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화어로 활짝 꽃피게 세심히 이끌어줬고
김정은 대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그래도 애국주의 고양의 일환으로 훈민정음이 다른 문자에 비해 매우 우수한 문자라고 가르친다.
실례로 영어 'school (스쿨·학교)'을 보면
차례대로 자음 세 개와 모음 두 개, 그리고 다시 자음 한 개가 연결돼 결합하지만
우리 글자는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 하나의 음절 단위로 묶어 쓸 수 있어 우수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남한에서는 맞춤법을 무시하고 뜻을 알 수 없는 줄임말이나 국적불명 말을 만들어
언어유희를 넘어 용인할 수 없는 단계까지 우리 글을 망가뜨렸다고 비난한다.
남북에서 우리 글, 민족 등을 부르는 단어가 다르다.
남한에서는 한국, 한민족, 한국인, 한국어 등으로 지칭하며 문자도 '한글'로 쓰지만
북한에선 조선, 조선민족, 조선사람, 조선어 등의 표현에 따라 '조선글'이라고 부른다.
북한 언어학자들은 단군 조선과 조선조 500년을 합치면
조선이란 호칭이 2500년 역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정통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민족은 조선민족, 언어는 조선어, 문자는 조선글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더욱이 조선시대 임금인 세종대왕이 문자를 발명했기 때문에 마땅히 조선글이라 불러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남한은 대한제국의 연속인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 국가이므로
'한(韓)'이라는 표현을 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인과 일본인보다 우리 민족을 일컫는 말은 유대인만큼이나 복잡하다.
아마 유대인과 우리 민족이 겪은 수난의 역사와 관련이 있으리라.
예전 다른 분단국도 우리처럼 혼란스럽지 않았다.
독일은 분단 중에 게르만족이란 호칭을 동·서독 모두 사용했고
국호, 민족, 문자 명칭에 거부감이나 적대감이 없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민족만큼 국호, 민족, 언어, 문자를 일컫는 말에 서로 거부감과 적대감을 가진 민족은 없다.
참으로 비극이다.
남북이 통일하려면 정치 통일에 앞서 이런 단어부터 통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