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한민호 前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

colorprom 2021. 8. 16. 14:31

 

 

25년 공직 생활 중 지금이 분위기 최악… 공무원도 부당한 지시 거부할 수 있어야”

[김은중이 만난 사람]
파면 소송 승소한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김은중 기자

입력 2021.08.16 03:00

정부를 상대로 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13일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 국장은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들을 국정의 파트너가 아닌 계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지금 공직 사회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하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탈원전소득 주도 성장 등 문재인 정부 정책을 공개 비판했다 파면된

한민호(59)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11일 정부를 상대로 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 2019년 10월 2월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가 파면 결정을 내린 지

681일 만이다.

 

13일 만난 한 전 국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공무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때로는 정부 정책에 반론도 펼쳐가면서 신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우리를 국정 파트너가 아니라 계도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현 정부는 공무원들 가슴을 뛰게 할 비전은 없고

‘시키는 거나 하라’는 잔소리만 남았다”며

“25년 공무원 생활을 했지만 지금 공직 사회 분위기는 최악”이라고 했다.

 

◇공무원에게 파면은 사형 선고

 

- 13개월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아든 소회는.

“변호사 비용을 700만원 정도 썼다. 변론서는 같이 작성했지만 재판 오고 가고 이런 건 다 변호사한테 일임했다. 2년이나 밥벌이를 하지 못해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집사람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아들이 둘인데 그래도 가족들이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아빠가 잘못한 게 아니다’라며 믿고 지지해 줬다. 공금을 횡령을 한 것도 아니고 결코 남한테 부끄러운 짓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구들이 버텨준 것 같다.”

- 공무원에게 파면은 어떤 의미인가.

“파면당하면 보통 생각하는 공무원 연금의 절반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형법에 비유하자면 사형 선고 같은 것이다. 한 집안에 파면 공무원이 있다는 건 전과자가 있다는 뜻과 다름없다. 보통 성(性) 비위·혼외 관계를 문제 삼거나, 형벌을 받고 전과자가 된 사람들을 파면시키는데 나 같은 경우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당신은 문재인 정부 고위 공무원이기도 했다.

논란을 예상하지 못했나.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법률가들이 정리해 줘야 할 부분이다. 공무원이 자기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정권을 잡자마자 반일(反日) 선동을 하고 ‘자유 진영의 희망’이라는 한국 원전 산업 문을 닫아버리는 걸 보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국가 경쟁력을 좀먹게 하는 정책으로 문체부 공무원이 외교·산업을 걱정하게 만든 게 더 잘못 아닌가. 대학 시절 잠시 운동권에 몸담았는데, 어렸을 때 같이 활동했고 당시 청와대에 있던 고위직으로부터 ‘좀 조용히 있어라’ 하는 핀잔도 들었다. 청와대가 호시탐탐 내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文 정부, 잘 안 풀리면 공무원 탓

- 지난 정부에선 왜 가만히 있었나. 그때라고 문제가 없었을까.

“박근혜 정부 때는 조선산업 구조조정 관련 나름의 목소리를 냈다. 노무현·김대중 정부를 문재인 정부와 같은 ‘민주 정권’으로 묶는데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지지층 반발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건 했다. IMF 사태를 수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두고는 좌파들이 신자유주의라 비판하지 않았나. 물론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오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두 사람이 나라의 큰 방향 자체는 흔들지 않았다.”

공무원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공무원 재직자는 122만1322명으로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11만3350명(10.2%) 늘었다. 이명박 정부(4만2701명), 박근혜 정부(4만3500명) 증가 수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 한 전 국장은 “숫자만 크게 늘었지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하다”며 “그저 계도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일이 풀리지 않으면 공무원 탓, 홍보 탓을 하니 흔쾌히 따르고 싶겠나”라고 했다.

한민호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지난해 3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금 공직 사회 분위기를 말한다면.

“그래도 공무원들이 우리나라에서 꽤 유능하고 쓸모 있는 집단이다. 7급·9급 시험 경쟁률만 봐도 굉장히 높고, 실제로 우수한 친구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무언가 해보려는 의지도 없고 시키는 것만 한다. 그것조차도 위에서 지시가 내려오면 메모하고 녹음까지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권이 시키는 걸 그대로 하면 나중에 화(禍)를 당한다’는 생각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 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무원들이 단순히 수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물을 먹고 공직 생활에 종을 쳤다. 국정 교과서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초를 겪었나. 상사가 시켜서 한 일인데 보호도 못 받고 불이익을 당했다.”

- 그게 문재인 정부 때만의 일은 아니지 않나.

“이전 정부에서도 청와대가 기조 설정을 하고 ‘나를 따르라’ 하는 경향성은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게 차이다. 이인영 의원과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관료들이 말을 안 듣는다’ ‘정권 4년 차 같다’고 말하다 들키지 않았나. 노무현 정부 때 공무원 사회를 장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 놓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정책 홍보가 안 됐다며 공무원들을 타박한다. 이러니 흔쾌히 따르고 싶겠나. 공무원 집단조차 통솔 못 하는 것 자체가 리더로서 무능(無能)을 인증하는 것과 같다.”

 

◇국민 가슴 뛰게 할 ‘큰 그림’이 없다

 

- 또 무엇이 불만인가.

“지도자가 공직 사회에 어떤 기풍(氣風)을 조성하고, 국민들이 ‘으쌰으쌰’ 할 수 있는 큰 그림을 제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박정희 대통령 때처럼 새마을 노래를 틀지는 못 하겠지만, 국민을 신나게 하고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세계 5위권으로 도약하자거나 우주선을 달에 보내자 하는. 소를 더 키우고 목장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지금은 과거 얘기만 하고 벌어 놓은 걸 어떻게 나눠줄 수 있을까만 궁리한다. 비전이 있어야 공무원들도 더 신이 나서 일할 것 아닌가.”

 

- 공무원 하면 ‘철밥통’ ‘복지부동’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공무원들이 반성할 부분은 없나.

“숫자가 100만명이 넘으니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공무원들도 정말 부당한 지시는 거절할 수 있어야 어디 가서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 그런 의미에서 원전 경제성 조작에 가담한 산업부 공무원들 일부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도둑질을 하라는 지시를 따른 건데 부끄러운 일이다. 자식들한테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

 

- 연금 개혁같이 꼭 필요한 과제에 공무원들은 저항하지 않나.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유일하게 연금 개혁을 하지 않고 있다. 돈으로 공무원들을 매수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노조 반발이 두렵겠지만 공무원들 다수는 기본적으로 공익(公益) 마인드가 탑재돼있는 사람들이다. 합리적인 개혁안을 낸다면 결국 수긍한다. 나라가 존속해야 공무원이 있는 거지, 나라가 다 죽었는데 공무원이 있을 수 있나.”

- 어떻게 공무원들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을까.

“큰돈을 벌려고 공무원이 되지 않았다. 일하는 보람이 있어야 한다. 과거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라 하고, 그것도 잘못된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구조다. 또 설거지하다 접시 몇 개 깨는 것쯤은 눈감아줘야 한다. 감사(監査) 무서워 일을 못 벌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 대선 주자들은 공무원들이 자신의 공약을 수행할 도구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멍청하고 사악한 생각이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판 깔아주면 ‘입안의 혀’처럼 굴릴 수 있는 게 공무원이다. 정치하신다는 분들 잘 한번 생각해보시라.”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할 것”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도종환 장관이 취임하자 한 전 국장만 콕 집어 ‘원 포인트 인사’가 났다.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2급)으로 좌천성 발령이 났지만 나름 신나게 일했고, 그런 그를 직원들은 “일은 많이 시켰지만 난생처음 큰 보람을 느꼈다”며 따랐다고 한다. 한 전 국장은 2017년 문체부 노조가 서기관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바람직해 닮고 싶은 관리자’로 뽑혔다. 파면 소송에서 승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문체부 선·후배들로부터 “형 늘 응원하고 있다” “선배님 끝까지 잘 버티시라”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서울신문은 2012년 연재한 ‘공직열전 2012’ 기사에서 그에 대해 “역사교사 8년 만에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공무원이 됐지만 너무 정열적이라는 평가다”라고 썼다.

- 공무원 생활의 목표는. 남들처럼 장·차관이 꿈이었나.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뒤늦게 고시를 봐서 합격했다.

입부 동기 중에 역사교육과 10년 후배도 있을 정도로 욕심을 내기에는 너무 많은 나이였다.

상사 눈치 안 보고 그때 그때 내 기준에서 무엇이 옳은가에 따라 일하려고 했다.

주관이 뚜렷하다 보니 좀 부담스럽게 보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나를 엄청 아꼈다.”

 

- 승소했으니 이제 곧바로 복직하는 건가.

“정부가 항소할 가능성도 크고, 아마 복직하더라도 다시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내년 6월이 정년인데 그래도 공무원 신분으로 정년 퇴직을 하고 싶다.

파면당하고서 일부러 생각을 안 하려 많이 노력했는데 공무원 생활할 때가 그립다.

동료들과 즐거웠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다.

사행산업감독위에서 매듭짓지 못한 사이버 불법 도박 근절,

확률형 아이템 개선 같은 과제를 처리하고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

 

☞한민호

 

1962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평택고와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한때 운동권에 몸담았지만

대한민국은 공산주의를 하기에는 너무 발전한 나라”라는 선배의 충고에 전향(轉向)했다.

대학 졸업 후 8년간 중학교 역사 교사로 일하다 행정고시에 합격,

1994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미디어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소셜미디어(SNS)에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쓴 것이 문제가 돼

2019년 10월 파면 처분을 받았다가 최근 파면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우리공화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출마해

3위(득표율 0.44%)로 낙선했다.

 

    

조국에 찍혀 파면된 문체부 한민호 국장 (펜앤초대석 ; 10월 16일)

文 정권 비판하다 파면된 한민호 前 문체부 국장

“100만 공무원 중 한 사람만이라도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에서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 보라고 페북에 글 올렸다”
⊙ “反日 캠페인, 原電 폐기, 소득주도성장… 모두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정책들”
⊙ “조국, ‘선비의 임무는 直言極諫’… 페북에 ‘죽창가’ 올리고, 하루에 3번이나 프사를 바꿨다”
⊙ “문체부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民度 높이고 애국심 갖게 하는 것…
북한이 미사일 쏘는데 남북 체육·문화 교류 이해 안 가”
⊙ 대학 시절 운동권… 교사생활 거쳐 뒤늦게 고시 합격,
2017년 문체부 노조로부터 ‘바람직한 관리자 賞’ 받아

韓民鎬
1962년생. 서울대 역사교육과·미국 카네기멜론대 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졸업 /
문화체육관광부 공간문화과장·국제문화과장·지역민족문화과장·장관정책보좌관·국제체육과장·
문화여가정책과장·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역임
 
사진=조진우
  지난 8월 20일 JTBC“친일이 애국?… ‘망언 자랑’ 고위 공무원 징계 회부”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JTBC “‘지금은 친일을 하는 것이 애국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현직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국민을 모욕하는 듯한 표현도 나오는데, 정부가 이 공무원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습니다”라고 보도했다.
 
  다음 날부터 인터넷 매체 등에서는 이 ‘고위 공무원’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비난성명을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몇 년 전 문화계 사정에 밝은 지인(知人)이
문체부에 아주 애국심 강하고 소신 있는 과장급 공무원이 하나 있다”고 말한 게 생각났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10월 1일 우파인사들의 인터넷 카톡방(카카오톡방)에
페이스북에 문재인(文在寅)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한민호 문체부 국장이 파면됐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지인에게 확인해보니 역시 그 사람이 맞았다.
한민호(韓民鎬・56). 박근혜(朴槿惠) 정권 시절 국장(2급)급인 문체부 미디어정책관·체육정책관을 지냈고,
얼마 전까지 국무총리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사무처장으로 있던 인물이다.
 
  기자는 10월 2일 한민호 국장 파면에 대한 기사를 인터넷 매체 <월간조선 뉴스룸>에 올렸다.
이 기사는 하루 만에 1만여명, 일주일 사이에 3만2000여명이 볼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10월 7일 한민호 전 국장을 만났다.
약속장소에 나타난 전 국장은 머리털을 완전히 밀어버린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
 
JTBC는 지난 8월 20일 한민호 전 국장의 페북 글들을 비난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사진=유튜브 캡처
  ― 멋있습니다.
 
  “굉장히 편해요. 머리카락이 얼마 안 남아서 오래전에 밀어버렸습니다.”
 
  ― 파면 통보를 받았을 때 느낌은 어땠습니까.
 
  “페북(페이스북)을 전체 공개로 해놓고, 거기에 소속과 신분까지 밝히고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각오하고 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 특히 노모(老母)께서 놀라고 힘들어하시는 걸 보니 그건 조금 힘드네요.”
 
  ― 불이익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건, 작심하고 페북에 글을 썼다는 얘긴가요.
 
  한 전 국장은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최악의 경우 파면까지 당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얘기는 해야겠다’ 하고 글을 올린 겁니다.
국대떡볶이 사장님도 ‘이 나라가 이렇게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할 말은 해야겠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듣고 ‘동지가 또 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 그분은 내일 인터뷰할 겁니다.
 
  “한번 만나고 싶네요.”
 
  ― 자신이 페북에 쓴 글들이 악의적으로 보도됐을 때 느낌이 어떻든가요.
 
  “제가 페북에 올리는 글들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나 민주당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보라고 올린 겁니다.”
 
  ― 강단이 보통 아니네요.
 
  “반일(反日) 캠페인, 원전(原電) 폐기 정책, 소득주도성장.
이런 것이 모두 대한민국을 멸망의 길로 끌고 들어가는 정책들입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100만명입니다.
그중에 단 한 명만이라도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북에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나라가 이 지경인데 공무원 놈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할 때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조국(曺國)이 과거 쓴 글 중에서 선비가 해야 할 기본 임무는 직언극간(直言極諫)’이라는 게 있더군요.
조국이 그런 말 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하하하.”
 
  ― 페북 내용은 어떻게 알려진 겁니까.
 
  “저쪽 사람들이 꾸준히 워치(watch)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쪽에도 지인들이 있거든요.
‘조심하라’는 얘기도 몇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너희도 민심이 이렇다는 걸 좀 봐라’ 하는 차원에서 계속 글을 올렸습니다.
징계사유서에도 페북에 ‘전체공개’해놓고 신분을 다 밝히고 글을 올린 게 괘씸하다고 되어 있더군요.”
 
 
  성실의무 등 위반 이유로 징계
 
  결국 이 때문에 한민호 전 국장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의 조사를 받았다.
문체부는 ‘징계의결요구서’에 아래와 같이 그 이유를 적시했다.
 
 < 가.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무) 위반 관련
 
  국가공무원법 제56조(성실의무)에 따르면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자는 현 정부 출범 후 대통령비서실 공직감찰반 조사 당일(2017. 6~2019. 7. 24)까지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는 시간 중 업무시간을 불문하고 수백 회에 걸쳐
페이스북에 글을 게시하였고,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친일 게시물을 직접 작성하거나 관련 기사를 연결하여 공직감찰반 조사를 받았으며,
문답 조사를 받은 다음 날(2019. 7. 25)에도 업무시간에 정부정책 비판 글을 게시하거나 공유하여
개전의 정이 없음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에서 확인된 사실이 있고,
 
  나. 국가공무원법 제63조 (품위유지의무) 및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 위반 관련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에 따르면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혐의자는 본인이 고위 공직자임을 공개한 상태에서 현 대통령을 지칭하여 ‘외교천재’라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을 사용하고, ‘아메바・지렁이’라는 표현을 인용(2019. 7. 23)하는 등 스스로 공직자 신분임을 망각하고,
현 정부의 대북 및 대일 정책을 편향되게 비판, 고위 공직자로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하였고,
 
  * 붙임1의 페이스북 게시글 요약의 “걱정할 것 없다. 우리는 외교천재를 보유한 나라다.
중국, 러시아가 까불면 촛불혁명을 수출하면 된다, 만세!”(2019. 7. 23)
 
  또한 동법 제65조(정치운동의 금지)에 따르면 (중략)
혐의자는 페이스북에 본인이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위 공직자임을 공개한 상태에서
정부 정책과 VIP를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등
언론에서 고위 공직자 페이스북 내용이라며 가짜 뉴스 생산 및 여론 호도용으로 활용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여, 동 사안이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 조사결과에 의하여 확인된 사실이 있으며 (후략)>
 
 
  “어딜 가나 일 열심히 잘 한다”
 
한민호 전 국장은 2017년 7월 문체부 최초로 노조가 뽑은 ‘바람직한 관리자 상’을 받았다. 이 상 수상자들의 사진을 담은 포스터가 1년간 문체부 로비에 걸려 있었다.
  ― 성실의무 위반,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까지 죄목(?)이 다양하네요.
 
  “다행히 징계위원회에서는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결정 내려줬어요.
그건 고마운데, 성실의무 위반, 품위유지의무 위반은 받아들였습니다.”
 
  ― 근무 시간에 페북 활동한 건 사실인 거죠?
 
  “페북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인들끼리 신변잡기 나누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미디어거든요.
선진국에서는 40%가 페북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비율이 20%에 달한다고 합니다.
  
징계위에 ‘페북을 했다는 것 자체는 정부도 SNS에서 정책홍보를 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올린 글은 99.9%가 국내외 뉴스고 0.1% 정도가 신변잡기였습니다.
‘나라를 걱정해서 그와 관련된 뉴스를 올리거나 내 의견을 올린 거지,
내 신변잡기를 올리면서 노닥거린 게 아니지 않으냐’고 주장했습니다.”
 
  한민호 전 국장은 “내가 페북만 하고 일을 소홀히 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문체부 노조(勞組)가 4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관리자’ 선정을 위한 무기명 설문조사를 처음 실시했는데
본부 국장으로는 제가 선정됐습니다.
이전부터 행해온 시상이 아니라 처음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 안 하고 노는 놈에게 노조에서 그런 상을 주겠습니까.
문화정책과장으로 있던 2015년에는 연말 근무성적평가에서 최고등급인 SS 등급을 받았습니다.
현 정부 출범 후 사감위 사무처장이라는 한직(閑職)으로 쫓겨 갔지만,
거기서도 저는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 사감위 사무처장으로 간 것은 문 정권에 찍혀서 좌천(左遷)된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건 진짜 자랑질인데, 저는 어딜 가나 열심히 일을 잘 해요.
직원들이 ‘전임 사무처장들에 비해서 5배는 일을 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저를 엄청 따랐습니다.
사행산업 3차 5개년종합계획을 입안해서 통과시켰고,
‘온라인불법도박단속에 관한 특별법안’을 마련해 의원입법으로 발의하도록 했습니다.
도박중독예방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사감위 창립 이래 처음으로 제게 상을 주었습니다.”
 
  한민호
전 국장은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현황, 사감위 사무처장 재직 중 한 일들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자랑질’이 아니라 ‘이 사람은 정말 일하는 공무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민호 전 국장은 여기서 또 조국 법무부 장관 얘기를 꺼냈다.
 
 
  “진정한 애국은 富國强兵에 기여하는 것”
  
“신문을 보니 조국은 하루 사이에 프사(페이스북에 나타나는 ‘프로필 사진’의 준말)를 세 번 바꾸었다고
하던데, 저는 2010년 페북 시작한 이래 프사를 한 번도 안 바꾸었어요.”
 
  ― 징계위에서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는 부분은 어떻게 해명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한 ‘외교천재’라는 말을 풍자적으로 사용한 것이
품위훼손인지는 의문이고. ‘지렁이-아메바’는 남의 글 가져오면서 따라온 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부적절했다고 인정했어요.”
 
  ― 솔직히 징계수위가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까.
 
  “해임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한변’(한반도 통일과 인권을 위한 변호사 모임) 김태훈 변호사를 만나고 왔는데,
‘징계수준이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 유사한 사례가 있을까요.
 
  “저와 같은 케이스는 없지 않을까요.
민정수석이 ‘죽창가’를 페북에 올리며반일선동의 선봉에 서고, 대통령이 반일 캠페인을 주도하는 상태에서
공공연히 ‘나는 친일파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고 하는 공무원은 그 전에도 없었을 것 같아요.”
 
  ―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 같은 말은 국민 정서상 지나친 얘기 아닐까요.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저는 진정한 애국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핵(北核) 문제, 경제 등에서 일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본과 갈등을 이어나가는 것은
국가적 자살(自殺)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해서 한 말입니다.”
 
  여기서 한민호 전 국장이 페북에 올린 글을 몇 개 보기로 하자.
 
  “일제시대 그들의 과오를 비판해야지, 그들을 악마화하는 건 오늘의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거다.
감정에 치우쳐 날조된 역사에 광분하는 게 애국이 아니다.”(8월 30일)
 
  “국익과 동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 없이는 국익을 지킬 수 없다.
동맹을 소홀히 하면 나라가 망한다.
국익을 위해 동맹을 버릴 수도 있다고? 무섭다.”
(8월 29일, ‘아무리 동맹관계여도 국익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에 대한 비판)
 
  “지소미아 파기에 이어, 한미동맹 파기를 선언하고 미군철수를 요구할까? 설마… 그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요즘 예민해진 모양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8월 26일)
 
  “70여 년 전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의 100분의 1이라도
바로 지금 북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인권유린에 대해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된 게 전혀 관심이 없나? 탈북한 모자가 굶어 죽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8월 14일)
 
 
  “개천의 붕어, 개구리, 가재도 아닌 나는?”
 
  ― 페북 내용이 우연히 언론에 알려졌다기보다는
현 집권세력이 이미 한 국장님의 성향을 알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찍혀서 잘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죠. 정권 바뀐 직후인 2017년 7월 사감위로 쫓겨 갔으니까요.”
 
  ― 그 직전에 임했던 체육정책관은 문체부 안에서는 꽤 요직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맡았을 때는 박근혜 정부가 유언비어 때문에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패주(敗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체육정책관을 맡기 전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과정에서 정부가 이기흥 현 회장의 당선을 막기 위해
부당한 개입을 했다고 해서 체육계의 원성(怨聲)이 높았어요.
게다가 체육정책관실 직원들이 국정농단에 연루됐다고 해서 검찰에 불려 다니느라 뒤숭숭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와 체육계의 갈등을 봉합하고, 직원들을 보듬어주는 일에 주력했고,
나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 파면 처분을 받은 후 문체부 선후배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퇴직한 선배들, 모셨던 장·차관님들로부터 위로하는 문자나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인간 한민호’를 알아보기 위해 개인사(個人史)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아버지는 평남 대동군 출신으로 1・4후퇴 때 열여섯에 혼자 월남(越南)하셨어요.
그러니 얼마나 고생하셨겠습니까.
끼니 걱정하는 집안의 막내딸인 어머니와 만나 결혼했는데, 제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저는 아버지 얼굴도 모릅니다. 이북에 있는 친가 어르신들이라도 죽기 전에 한번 뵈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는 온갖 험한 일을 다 하셨죠.”
 
  조국 사태로 시끄럽던 지난 8월 20일 그가 페북에 올린
“개천의 붕어, 개구리, 가재도 아닌 나는 뭘까? 송사리? 소금쟁이? 방개?”라는 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反日? ‘소주성’… 無知해서 저지르는 것”
 
  ―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나왔더군요.
 
  “저도 이른바 586세대로,
대학 다닐 때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 사상이 대학가를 휩쓸던 불행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도 운동권 언저리에 몸을 담았습니다.
2학년 올라가면서 과(科)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운동권 핵심들이 역사교육과에 몰려 있었어요.
그래서 역사교육과에 간 거죠.”
 
  ― 저도 어려서부터 역사를 좋아해서 한때 역사교육과에 진학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 가길 잘한 겁니다.
지금 한일관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한국 사학계 내지 역사 선생님들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해악(害惡)을 너무 많이 끼쳤어요.”
 
  ― 학생운동은 얼마나 열심히 했습니까.
 
  “대단하게 한 건 아닌데, 대학 다니는 동안 학교 공부를 거의 안 했어요.
마르크스-레닌주의, 각국 공산주의운동사 이런 것들만 공부했죠.
데모하다가 걸려서 1년 무기(無期)정학을 받기도 했고, 학사경고도 두 번 받았습니다.
간신히 졸업은 했는데, 아마 역사교육과가 생긴 이래 졸업생 중에는 제가 최악의 점수를 받았을 거예요.”
 
  ― 저는 운동권 근처에도 안 가봤지만, 1980년대에 정말 공부 안 했죠.
 
  “1980년대 학번, 586세대는 기본적으로 공부를 안 한 세대예요.
그러면서 민주화 세대라고 잘난 척은 오지게 하고….
그러니 정권을 잡고서도 잘못된 선택들을 하는 겁니다.
반일정책, 은근히 반미(反美)하는 것, 친중(親中)·친북(親北) 정책, 듣도 보도 못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원전 폐기 정책…. 하나같이 무지(無知)해서 저지르는 것들이거든요.
 
공부를 안 한 세대가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는 게 참 답답한 일입니다.
우리 앞 세대가 죽을 둥 살 둥 나라를 키워놓은 저력(底力)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 버티는 거죠.
이렇게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일본이 도와줬기 때문이고….”
 
 
  후배들을 집단 전향시킨 운동권 선배
 
  ― 8년간 교사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국립 사범대학을 나오면 별도의 시험 없이 교사가 될 수 있었어요. 그 성적에도 불구하고….”
 
  ― 운동권 출신인데 전교조 활동은 안 했습니까.
 
  “초기에 잠시 관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에서 멀어졌습니다.”
 
  ― 그런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선배를 참 잘 만났어요.
저를 의식화시킨 서울대 78학번 선배가 있었습니다. 서울대에서는 유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죠.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하는데,
하루는 그 선배가 후배들을 소집했습니다. ‘중요한 얘기를 하겠다’면서 두 시간 정도 발제를 하더군요.”
 
  ― 무슨 얘기였습니까.
 
  “먼저 공산주의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더군요.
‘공산주의를 하려면 생산수단을 국유화(國有化)하고 계획경제를 해야 한다.
계획경제 자체도 매우 비효율적인데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계획경제를 하려면 독재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독재는 반드시 부패한다.
따라서 공산주의라는 정치·경제 모델은 인류가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유명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가 그렇게 말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황당했죠.
그러고 나서 대한민국에서 공산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뭐라고 하던가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
‘대한민국 사회가 이미 상당 수준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공산혁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산혁명을 하기에는 너무 발전한 나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선배는 ‘나는 좀 늦었지만 독일로 유학을 가겠다. 너희는 전향(轉向)해라’고 하더군요.”
 
  ―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그냥 술집에서 심경 토로하는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자리 만들어서 후배들을 모아놓고 말했으니,
그런 선배가 어디 있겠어요. 그때 그 양반도 20대 후반에 불과했을 때인데….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전향했죠.”
 
 
  “공무원이 진짜 중요하다”
 
  ― 교사생활은 왜 그만둔 건가요.
 
  “한 3년 정도 재미있게 교사생활을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애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싶더군요.
마침 고교 동창 하나가 행시(行試)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그게 31세 때쯤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2년 남짓 공부하고 합격했습니다.”
 
  ― 문체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요.
 
  “역사교육과 나왔으니 문화 쪽에서 할 일이 있겠다 싶어서 선택했습니다.”
 
  《서울신문》이 2012년 연재한 ‘공직열전2012’ 기사를 보면,
한민호 당시 지역민족문화과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역사교사 8년 만에 뒤늦게 뜻한 바가 있어 공무원이 됐으나 너무 정열적이라는 평가다라고 했다.
 
  ― 요즘 열성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을 찾기 힘듭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그만한 성과가 있나요.
 
  “성과에 대한 보상(인센티브)은 없어요. 하지만 공무원이 진짜 중요합니다.
사무관만 돼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무관 시절이던 1998~1999년 공연법 전부개정안을 제가 만들었어요.”
 
  여기서 또 ‘자랑질’이 시작됐다.
 
  “그때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개혁이 화두(話頭)였어요.
각 과(課)별로 규제개혁안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공연법에 쓸데없는 규제가 많았어요.
공연하려면 신고를 해야 하고, 사전(事前)에 각본심의도 받아야 하고,
공연사는 시·군·구청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어요.
외국인 공연은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로 규제 일색의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규제를 다 들어내니 공연법이 이름만 남게 될 판이었습니다.”
 
  ― 그래서요.
 
  “‘이 법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공연장 안전점검 제도무대예술인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공연법 안에 넣었습니다.”
 
  ― 무대예술인 자격증이라….
 
  “무대가 돌아가려면 무대기술자, 조명, 음향… 이런 분들이 필요하잖아요.
전문성을 가진 분들임에도 그동안 막노동자 취급을 받았거든요.
공연과에 오래 근무하면서 그분들의 사정을 알고 있던 터라 자격증 제도를 만들어
그분들이 대우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면 합법”
 
한민호 전 국장은 공간문화과장으로 일하면서 군산 근대문화거리 조성 등을 위해 힘썼다.
  다시 ‘일’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자 한민호 전 국장은 신이 나는 듯했다.
 
  “역시 공연과 사무관 때인데,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동차극장을 (운영)하겠다는 사람이 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공연법에 자동차극장에 대한 규정이 없었어요.
자동차극장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 없었으니까요.”
 
  ― 어떻게 문제를 풀었습니까.
 
  “제가 법을 해석하는 기준은 이렇습니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으면 합법이다.’”
 
  ― 그렇죠.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런데 공무원들이 이런 생각을 안 해요.
한 가지 걱정은 ‘자동차극장이 탁 트인 공간인데
거기서 19금(禁) 영화를 상영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극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불렀어요.
그 사람들은 씩 웃으면서
‘청소년보호법이 있는데 우리가 19금 영화를 상영하겠느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라’고 하더군요.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청소년들에게 19금 영화를 보여줄 경우 형량이 무척 무거워요.
 
  그걸로 오케이 됐습니다. 질의가 온 지자체뿐 아니라 전국 시·군·구에 공문을 보냈어요.
‘자동차극장은 합법’이라고 알리면서
‘다만 산림법·농지법·청소년보호법 등의 법령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어요.
그 후에 자동차극장이 많이 생겼어요.”
 
  ‘자랑질’이었지만 듣기만 해도 시원했다.
대개의 경우 새로운 일이 생기면 문제가 생길까 봐 먼저 ‘안 된다’는 소리부터 하는 공무원이 많은 세태에서 ‘이런 공무원도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 공무원 생활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공간문화과장 시절 유·무형 문화 콘텐츠를 가지고 도시재생사업을 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07년 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보람 있어서 자원해서 그 자리에 오래 있었습니다.
 
  군산 근대문화거리, 대구 동성로 리모델링 사업, 부산 광복동,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 사업 등을
그때 했지요. 금강 하구의 익산 성당포구에는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연수원을 지어주었는데,
유명한 연수 겸 관광지가 됐습니다.
그 마을 대표님은 수시로 제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 한민호 국장 퇴임식은 반드시 여기서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역대 문체부 장관 중에 인상적인 분이 있습니까.
 
  “YS 시절 장관을 지낸 김영수(金榮秀) 전 장관은 검찰 출신으로 안기부 차장과 민정수석을 지낸 분입니다. 퇴임 후에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청소년운동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 등 공익을 위해 봉사한 분이어서 존경합니다.
 
  박지원(朴智元) 전 장관은 공보관실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모셨는데,
정말 부지런하고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습니다.
정치적 생각은 다르지만 그분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 박지원 전 장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의외입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 남북정상회담 할 때가 바로 박지원 장관을 모시고 일할 때였습니다.
저도 이산가족이어서 그때는 ‘남북관계가 정말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게 아닌가’
‘나도 이북에 있는 친척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북한에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더 이상 환상을 갖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오히려 북한을 직시하고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체부가 할 일
 
  ― 우파 성향인데 좌파 정권 시절에 좌파 성향 장관들 밑에서 일하면서 갈등은 없었습니까.
 
  “예컨대 이 정부 들어와서 남북 체육・문화 교류 같은 것들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건
문제라고 봅니다.
 
  북한이 비핵화(非核化)를 하고 명실상부하게 남북 공존관계로 가는 분위기 속에서라면
남북 체육 교류도 좋고 문화 교류도 좋죠.
하지만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쏘아 대고,
남북대화와 미북대화를 하는 중에도 핵폭탄을 만드는 상황에서
그런 교류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문화 영역이 이념 대결의 최전선인데,
문체부에서 일하면서 문화계의 좌편향성 문제를 체감(體感)한 적은 없습니까.
 
  “개인적으로 특별히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문체부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은
국민들의 민도(民度)를 높이고, 애국심을 갖게 하고,
이런저런 국내외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문체부교육부를 합치는 게 옳다고 봅니다.”
 
  ― 흥미로운 발상이네요.
 
  “문화가 없는 교육은 공허합니다. 뇌가 없이 빈 몸만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반면에 교육이 없는 문화는 신체가 없이 뇌만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소한 불이익 때문에 입 다물 수 없다”
 
  ― 앞으로 소청(訴請)심사, 소송 등을 해야 할 텐데….
이렇게 언론과 인터뷰하는 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없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소청심사위원회는 어차피 행정부 소속이고, 법원에도 좌편향 판사들이 있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국대떡볶이 사장님 말씀처럼,
개인의 소소한 불이익 때문에 나라가 절벽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생각합니다. 국민의 50~60%가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재임을 반대하는데,
이런 상황을 도대체 언제까지 끌고 갈 건지….
경제・군사적으로 국제정세도 위중하고…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을 자다가 수시로 깨곤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한민호 전 국장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 얘기는 꼭 좀 써주십시오,
‘100만명의 공무원 중에서 나 한 사람만이라도 이런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요.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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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이 만난 사람]

"나라 망하는데 공무원들 입 다물면… 이는 忠臣의 자세 아니다"

 
조선일보
                         
             
입력 2019.10.14 03:12

[엘리트 국장급 공무원은 왜 파면됐나… 한민호 前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

"朴정부, 국정 운영에 문제 많았지만 나라를 위기에 몰진 않아
지금처럼 반일·탈원전·소득 주도 성장 같은 엉뚱한 짓 없었다
산업부 공무원이 불이익 감수하고 탈원전에 한마디 했다면…
외교부 한 명이라도 지소미아 파기 반대했다면 내가 안 나섰다"

한민호 전(前)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이 9월 20일 파면됐다.

사유는 '근무시간에 수시로 페이스북에 VIP(대통령)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하거나 친일 게시물을 올렸고 청와대 감찰 조사를 받은 다음 날에도 이런 글을 올린 걸 보면 개전의 정이 없다'로 되어 있다.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 의무)와 63조(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장차관도 아닌 국장급의 파면이라 별로 '뉴스'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개 비판한 이렇게 간 큰 공무원은 없었다.
그런 사유로 잘린 경우도 유례없다.
약속 장소에 그는 삭발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한민호씨는 “내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라고 말했다.한민호씨는내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라고 말했다. /최보식 기자
―징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머리를 밀었나?

"머리가 빠져서 20년 전부터 이렇게 다녔다.
나를 마뜩잖게 보는 이도 있겠지만, 조직 안에서 나는 일 잘한다고 사랑받아왔다.
전임자가 손대지 않고 미뤄둔 숙제를 잘 푼다고 '해결사'라는 말도 들었다.
2007년에는 '우수공무원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근무 평가에서는 늘 몇 % 안에 들었다.
재작년 문체부 노조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으로 뽑혔다."

―본인의 페이스북 글이 문제가 됐는데,
공무원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발언을 해대면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되겠나?

"지금 문제는 공무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데 있다.
공무원 숫자가 약 100만명이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한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했나.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본인 담당 업무와 무관한 정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주제넘는다고 보지는 않나?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된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소속 부처와 상관없이 국정 전반에 자기 식견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본다.
나라가 위중한 상황에서 직언하는 게 고위 공무원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탈원전 정책에 대해 담당 산업부 공무원이 한 명이라도,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에 대해 외교부나 국방부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 발언을 했으면
내가 안 나섰을 것이다."

―직속 상급자인 문체부 차관에게서
'페북에 글 쓰는 것을 자제하라'고 주의를 먼저 받은 것으로 아는데?

"페이스북은 내 개인 계정이다. 상급자가 하라 말라 할 법적 근거가 없다.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고 묻자, 차관은 '개정은이라는 표현이 그렇고…'라고 말했다.
그 뒤 '개정은'이라는 표현은 안 썼다."

―'개정은'을 '김정은'으로만 고치고 페이스북 글쓰기를 계속했다는 것인데,
상급자가 주의를 주면 따르는 시늉을 해야 하지 않나?

"법적으로 내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지시라면 따르지만 이는 내 직무와 상관없는 권고다.
말 안 들었다고 기분 나쁘면 인사 조치를 하면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봤다.
지금 공무원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심사다.
이는 내가 배웠던 충신(忠臣)의 자세가 아니다."

―차관의 주의가 있고서 일주일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 감찰을 받았다.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에 계속 글을 올린 것은 징계 사유가 되지 않겠나?

"내가 일을 안 하면서 페북질을 하면 욕하겠지만, 내 일을 다 하고 플러스로 나라 걱정을 했다.
내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을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
조국이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면 친일파'라고 페북에 글을 올린 다음 날
'그래 나는 친일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민정수석실에서 내게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면 '나는 친일이다'라는 글이 청와대 조사의 결정적 빌미가 된 것 같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대놓고 맞받은 셈인데?

"역대 정권마다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했고 국민은 그냥 끌려들어 간다.
국민은 반일 메시지에 반사적으로 분노한다.
'나는 친일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일 관계를 냉정하게 보자는 취지였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과오를 비판해야지,
해방된 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을 악마화하는 것은 우리 국익을 위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한민호씨의 페이스북 글.한민호씨의 페이스북 글.

청와대가 본인에 대해 '사상 검열'을 했다고 보나?

"청와대 방침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으면 이렇게 나를 찍어냈겠나.

청와대 창성동 별관에서 4시간 조사를 받았다.

담당 조사관이 반일 감정,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등을 비판한 페북 글 수십건을 출력해놓고

왜 썼는지에 대해 물었다.

내가 답변하자, 그는

'옳은 말씀인데 너무 솔직하게 썼다. 근무시간에 한 것도 문제가 된다. 징계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조사를 받고 바로 다음 날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청와대 권력에 대한 반기처럼 비쳤겠는데.

"나는 처음부터 소명을 갖고서 했다.

서울대 사대 역사교육과를 나와 중학교 역사 선생을 8년 하다가 공무원이 됐다.

교사 시절 충신·애국자에 관한 얘기를 학생들에게 많이 했다.

그런 내가 공무원이 돼 눈앞에 뻔히 잘못된 걸 보면서 입 다무는 것은 옳지 않다.

제자들이 다 보고 있다."

―중앙징계위원회를 앞두고 8월 14일에는

'나 스스로 친일파라고 여러 번 공언했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며

예민한 글을 또 올렸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글의 파장이 어떨지는 알았을 것 아닌가?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썼던 석사 논문의 제목이 '한·일 간 상호 인식의 역사'였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잘 알고 교류하고 있을 때는 화를 안 당했다.

교류를 끊고 무시하고 일본을 모를 때는 화를 입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동북아 안보경제협력 측면에서 일본과 잘 지내는 친일을 해야 한다. 그게 애국이다.

징용공 배상 판결지소미아 파기로 한·일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개전의 정이 없다'는 80년대식 표현까지 썼는데?

"중앙징계위는 40분간 열렸다.

당초 감봉 같은 경징계를 예상했지만 들어가 보니 굉장히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친일파 발언에 대해 '저런 친일파 놈이 있나'라는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청와대의 오더가 있었다고 본다."

―당신은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겠지만, 한쪽 이념이나 진영에 치우쳐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나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해 간신히 졸업했다.

교사를 하면서도 좌파 이념을 버리지 못했다.

동구권이 무너진 뒤 어느 날 '골수 빨갱이'인 대학 선배가 본인이 의식화를 시킨 후배들을 모아놓고

'왜 공산주의를 버려야 하나'라는 발제를 했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해 계획경제를 하는 것인데 이는 독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공산혁명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나는 운동을 포기하고 독일 유학을 가겠다. 너희도 빨리 전향하라'고 했다.

고맙고 훌륭한 선배였다.

그 뒤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1994년 행시를 쳐 문체부에 들어왔다.

내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도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좌경화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당신은 현 정권 들어

문체부 핵심 보직인 체육정책관에서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밀려났다고 들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첫 국장급 인사에서 나 홀로 대상이 됐다. 나 혼자만 콕 찍어 발령을 낸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그 시점 문체부 노조의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에 뽑혔으니

내가 업무상 잘못한 것은 없었다."

―왜 혼자만 좌천성 인사 대상이 됐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빌미가 됐는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내 성향에 대해 청와대 보고가 올라갔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나는 80년대 좌파 운동권의 바이블인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책이다. 해당 출판사는 반성하는 의미에서 상응하는 책을 내라'는 식의 글을 올린 적 있었다.

현 정권 들어와서는 사드 배치에 대해 애매모호한 자세를 비판하는 글도 페이스북에 썼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써왔나?

"물론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대우조선 구조 조정 방식 등에 대해 비판했다.

당시에도 문체부 차관의 구두 경고를 받았지만 페이스북에 글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때도 불이익을 받았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장으로 승진해 핵심 보직인 미디어정책관과 체육정책관을 맡았다."

―통상 공무원은 위계질서를 인식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당신은 문 대통령에 대해 '외교 천재'라고 조롱하며

'지렁이, 아메바' 표현이 나오는 다른 사람의 게시물도 인용해 놓았다.

대통령은 공무원 조직의 최상급자인 행정수반 아닌가?

"중앙징계위에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글을 쓴 것은 한·일 관계가 심각한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의 전투기가 우리 독도 상공을 침범했을 때다.

속이 상해 '문빠'들이 썼던 '외교 천재'라는 표현을 빌려 해결해보라고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금과 같은 강도(强度)로 박 대통령을 조롱·비판하는 글을 올렸나?

"대통령은 국정 운영 스타일 등에 문제가 많았지만,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엉뚱한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정부의 반일 정책,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같은 것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타령'을 하지만 북한 정권에 욕은 욕대로 다 얻어먹고 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를 파기해 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고 본다."

그는 입바른 소신(所信)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와 같은 공무원 한 명을 포용 못 할 정도로 자신감 없는 정권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4/2019101400012.html

 

 

김석수(kim****)2019.10.1414:50:36신고
노무현시절 양정철이 한 말 생각나네요, "배 째라 이거지요? 배 째드리지요". 지금 우리 나라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장 같은 분이 많이 필요할 듯한데, 참고 기다리세요, 분명 좋은 날 올 겁니다
홍유표(y****)모바일에서 작성2019.10.1414:16:00신고
차기 민정수석감이다 힘내시길
최석호(csh4****)2019.10.1414:15:10신고
이런분이 계시기에, 그래도 희망이 조금이나마 보입니다.
김윤복(wmf****)모바일에서 작성2019.10.1414:13:09신고
조선시대 성웅 이순신 장군도 이런 느낌 이었을 것이다.
조만천(a5231****)모바일에서 작성2019.10.1414:12:45신고
답답한세상에 시원시원한말들 감사합니다 앞으로 귀하가하고싶은일 꼭 이루길 응원합니다
국회의원/장관 화이팅!!!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4/20191014000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