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안병욱·김태길… 우리는 어떻게 50년 우정을 지켰는가 (김형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0. 12. 15:39



안병욱·김태길우리는 어떻게 50년 우정을 지켰는가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10.12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김형석의 100세일기 일러스트
일러스트= 이철원
지난주에 책 두 권이 배달되었다.
고려대 동문들이 보낸 인촌(仁村)에 관한 책과 세 철학자가 남긴 '인생의 열매들'이었다.
나에게는 두 스승과 두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도산 안창호인촌 김성수 두 분은 내가 직접 가르침을 받은 은인이다.
17세 때 도산의 마지막 설교를 들었고,
27세부터 7년간 중앙고 교사로 지낼 때는 재단 이사장이던 인촌의 정신적 영향을 받으면서 일했다.

왜 그분들을 잊지 못하는가.
그들의 희생적인 애국심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분의 폭넓은 , 사랑이 있는 인간성에 공감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흥사단만큼 인재들이 모여 민족에 봉사하는 공동체가 없다.
그것은 도산인격과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흠모심 때문이다. '
죽더라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도산의 말씀은 오늘도 절실한 충언이다.

요사이 애국심은 아랑곳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청와대정당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1955년 인촌의 장례식 날 오후였다.

나도 그 행렬을 따라갔다.

운구 행렬이 고려대 교정에서 끝났다.

고려대 교수들이 휴게실에 모여

'선생이 살아 계실 때는 우리가 가장 사랑을 받아 왔는데,

상대적으로 정치성이 짙은 국민장이 되니까 좀 아쉽다'는 얘기를 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사모님 얘기도 생각난다.

해방 후 평양에서 남편과 작별하고 그의 유품 머리카락을 안고 서울에 왔을 때 앞날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호소할 곳도 없었다.

그때 인촌이 사람을 보내와 찾아갔다.

인촌"얼마나 힘드시냐"고 사모님을 위로하면서 '필요하면 거처할 집이라도 준비하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도와달라는 소리가 입안까지 차 있었는데, 두고 온 선생(남편) 말씀이 생각나

"괜찮습니다. 여러 분이 도와주고 있어서"라고 거짓말을 하고 떠나왔다는 얘기였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말고 나 대신 고생해 달라"던 고당의 간곡한 유언이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친구인 안병욱김태길도 그랬다.

우리에게 오늘이 있게 한 배후에는 젊은이들과 나라를 위하는 공통된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 때문에 50년간 우정을 갖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두 친구는 도산, 인촌과 같이 인간미가 풍부했다.

직업과 사회적 편견을 벗어나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았다.

한번은 서울대에 일이 있어 찾아갔다.

기다리고 있던 김태길 교수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꾸미면서 "난 오늘 김 교수는 못 오는 줄 알았어!"라고 했다. "왜?" 했더니 "바람이 몹시 불어서 도중에 날아간 줄 알았지?"라고 해서 모두 웃었다.

그러면서 잡은 손이 유달리 따뜻했다.

그 손이 말하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래 못 만났어'라고.

안병욱 선생도 친구로서 나에게 유언을 남겼다.

"김 선생은 우리들보다 정신력이 강하니까 우리가 못다 한 일들을 마무리 잘해 줄 거야."

더 이상 건강이 유지되기 어려움을 예감한 듯했다.

선생도 그렇게 떠났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1/20191011020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