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 하나를 보았다. 참 예뻤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단풍보다 꽃이 늘 더 좋았다. 그런데 단풍을 더 좋아한다는 법륜 스님의 강연을 듣고 '과연 그렇겠구나' 싶었다. 스님은 잘 늙음이 청춘보다 좋을 수 있는 이유를 단풍에 빗대어 말했다. "꽃은 떨어지면 지저분하게 변색되지만 단풍은 길을 융단같이 덮습니다. 책갈피에 넣어 쓸 수도 있고요."
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다. 진딧물 같은 곤충을 향해 겨울을 나는 자신의 경계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몸에 있는 것을 전부 떨구고, 색 전체를 바꾸는 행위에는 엄청난 신체적 비용이 따른다. 그러므로 또렷한 가을빛을 내는 나무는 주위의 그 어떤 나무보다 건강하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단풍을 노년에 비유하면 생각이 더 풍성해진다. 가령 나이가 들수록 잔소리가 많아지는 건 경험이라는 빅데이터가 쌓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 잘될 것이고, 저렇게 하면 망할 것이라는 그 나름의 데이터 말이다. 하지만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하는 좋은 말은 잔소리일 뿐이다. 이걸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어렵고, 중간에 말을 자르거나 자주 노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 단풍을 보며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걸 기억하는 것도 좋은 공부다. 비우고 덜어
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가을 숲길을 걸으며 이제부터라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으로 자신을 온건히 지키는 나무의 지혜를 돌아보고 싶다.
"겨울은 추워서 좋고, 여름은 더워서 좋습니다. 둘 다 좋아해요." 스님 말을 듣다가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얼마나 풍요로울까 싶다. 봄이 좋은 건 꽃이 피어서고, 가을이 좋은 건 단풍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