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파리특파원](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10/03/2019100302465_0.jpg)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새 책(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불평등을 해소하자며 내놓은 대안은 전위적이다.
모든 청년에게 정부가 억대의 '기본 자산'을 지급하자는 그의 해법에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와 달리 왜 정치가 불평등을 방조하게 됐는지 연유를 설명한 대목에는 반박이 드물다.
우파와 시장의 횡포라는 뻔한 도식을 피해 균형을 갖췄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2차 대전 이후 불평등 해소에 힘을 쓰던 서구의 중도 좌파 정당이
1980년대 이후 '엘리트에 의한, 엘리트를 위한' 집단으로 축소·변질됐다고 꼬집는다.
그는 교육 수준 높은 '브라만 좌파'가 부를 움켜쥔 '상인 우파'와 권력 쟁탈전을 벌이는 데 치중하는 사이
불평등 확대가 방치됐다고 말한다.
상위 계급끼리의 다툼에서 소외된 평범한 이들은 극우, 극좌 정당을 기웃거렸고,
이내 중도 좌파가 무너졌다는 게 피케티의 분석이다.
이런 현상이 가장 뚜렷했던 선거가 2017년 프랑스 대선이라고 했다.
당시 1차 투표에서 극우, 중도 우파, 극좌, 정치 신인(마크롱 현 대통령) 등 4명의 후보가
각 19~24% 득표율로 군웅할거했다.
반면 집권 사회당의 중도 좌파 후보는 6%대를 득표하며 처참한 결말을 맞았다.
여당 후보가 대선에서 5위를 한다는 건 세계 정치사에 전례가 드물다.
사회당의 실패는 피케티가 제시한 틀로 설명할 수 있다.
프랑스의 좌파 엘리트 집단은
부유세 도입으로 '상인 우파'의 부(富)를 억누르며 정의를 실현했다고 자부했다.
현실은 의도치 않게 굴러갔다.
부자와 기업이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경기가 시들고,
그에 따라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는 흐름이 도미노처럼 벌어졌다.
직전 대통령인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부촌(富村)에서 자랐고, 엘리트 학교를 나와 교수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평범한 이들의 삶을 모르는 '금수저 좌파'가 결과적으로 저소득층 삶에 비수를 꽂고 선거에서 자멸했다.
사회당에는 제2, 제3의 올랑드가 넘쳐났다.
지금 한국의 집권당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80년대 명문대 운동권이었던 이들이 모여 권력을 탐하고 누리느라 바쁘다.
법무장관 부부가 자녀를 명문대 울타리 안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했듯
자기 이익 추구에 에너지를 쏟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서민의 삶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상인 우파'를 제압하는 데 화력을 집중한다.
기업의 숨통을 조르는 사이 실물 경기는 파탄에 이르고 있고,
해외 투자를 명목으로 막대한 돈이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중이다.
피해는 서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피케티의 지적대로 좌파 정당이 평범한 이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고 권력을 얻는 데 심취하면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의 집권당도 이대로 가면 프랑스 사회당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