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미·일·중, "영원한 敵은 없다"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19. 9. 20. 17:58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48] ··, "영원한 은 없다"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입력 2019.09.20 03:12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중국의 국공합작 사정이 급변한다.
국민당공산당 지도부는 겉으로는 협상에 임했으나
양측 모두 상대와의 평화적 공존이 비현실적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소소한 충돌이 끊이지 않던 1946년 초여름 국민당군이 전면 공세에 나서자
중국 대륙은 다시 한 번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양측 간에 격심한 전력 차이를 보인 것은 제공권이었다.
미국을 등에 업고 항공기 수백 대를 운용하는 국민당군에 비해
공산당군의 항공 전력은 전무(全無)한 상태였다.
이때 공산당 지도부가 다급하게 손을 벌린 대상은 ()일본군이었다.

공산당 중앙동북국 서기 펑전(彭眞)은
포로로 억류 중인 관동군 제2항공군 항공대대장 하야시 야이치로(林彌一郞) 소좌를 선양(瀋陽)으로 불러
군사기술 제공 협력을 요청한다.

1946년 1월 일본군 항공대원들의 협조로 동북민주연군항공총대가 발족한다.
공산당군 최초의 항공부대 편성이었다.
항공총대는 그해 3월 항공학교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공군 인력 양성에 나선다.
항공학교의 산파역이자 주임교관으로 인민해방군 공군 창설에 기여한 하야시
1956년이 되어서야 일본으로 귀환하였고,
귀국 후에는 일중우호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양국 우호 친선에 진력한다.

훗날 인민해방군 공군사령관을 역임한 왕하이(王海) 상장(上將)은

일본군 교관에게서 조종술을 배운 동북항공학교 생도 출신이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소련이 원조한 미그 15에 탑승해 미군기를 9대나 격추한 중국의 전쟁 영웅이다.

1985년 왕하이가 데탕트 분위기 속에 서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이한 사람은

그 자신이 한국전에서 미그 15 두 대를 격추한 찰스 가브리엘 미 공군 참모총장이었다.


한때 같은 하늘 아래에서 적으로 맞섰던 두 에이스 파일럿이 · 친선의 상징이 되어 해후(邂逅)한 것이다.


구원(舊怨)에 얽매여 현재와 미래를 과거의 포로로 삼는 것은

국제 관계에서 금물(禁物)임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19/201909190328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