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소설가](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9/17/2019091702819_0.jpg)
우리를 공산주의로 이끌었던 수십 가지 동기 가운데 나를 가장 매혹시킨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였다.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의 운명을 실제로 결정했다. 내가 빠져 있던 것은 권력의 도취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역사라는 말 잔등에 올라탔다는 사실에 취해 있었다. 추악한 권력을 향한 탐욕으로 변해버리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때는 우리가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환상이 나에게 있었다.
- 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
여학생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엽서에 폼나게 적어 보냈던 '트로츠키 만세!' 한 줄이 스무 살 청년의 인생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자신도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던 루드비크는 스탈린이 정적으로 삼았던 자의 이름을 넣어 농담했다는 이유로 사상을 의심받아 친구들에게 버려지고 당에서도 쫓겨난다. 탄광에 강제로 끌려가 몇 년이나 보내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미래도 빼앗긴다.
밀란 쿤데라가 196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농담'은 개인과 자유를 말살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공포를 잘 보여준다. 루드비크는 친구라 믿었던 이들이 인민재판에 자신을 세우고 추방을 선고하던 순간의 충격을 평생 잊지 못한다.
![밀란 쿤데라 '농담'](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9/17/2019091702819_1.jpg)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천명한 법무부 장관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사회주의의 궁극적 목표가 공산주의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대학가에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사진을 내건 주점이 문을 열 예정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철거하겠다고 주인이 말했다지만, "문제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는 반응이 더 놀랍다. 술집 콘셉트가 흥미롭다는 일부 사람의 관심과 홍보 효과를 위한 것이니 죄가 되지 않는다는 법 전문가들의 논평도 당혹스
럽다.
공산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우정과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당에 고발당하는 건 아닐까, 친구와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연인과 속삭일 수도 없는 세상에서 큰 소리로 외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공산당에 대한 찬양뿐. 대학가 주점에서 "수령님을 위하여 건배!"를 외치는 청년들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