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3루서 태어나고는 3루타 친 것처럼 군다 (어수웅 부장, 조선일보)

colorprom 2019. 9. 7. 16:04


3루서 태어나고는 3루타 친 것처럼 군다


조선일보
                         
             
입력 2019.09.07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어수웅·주말뉴스부장


프로야구 10개 구단 팬들이 모두 응원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LG트윈스 한선태(25). 오늘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학창 시절 야구부는 구경도 못 한 비(非)선수 출신인데, 프로야구 1군이 됐죠.
전례 없는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요즘은 재능과 돈이 함께 받쳐줘야 가능한 게 운동이죠.

한선태는 편의점 알바 뛰며, 종이 박스 접어 생활비를 벌며 사회인 야구를 했습니다.
빽도 없고 돈도 없는 '무스펙 청년'의 10년 꿈.
첫 등판 때 던진 공에 최일언 투수 코치가 이렇게 적었답니다.
"젊어서 흘리지 않는 땀은 늙어서 눈물로 나온다."

지난해 3월 첫 주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낮에는 국자 잡고 밤에는 소설 쓰는 청년이었습니다.
김동식(34). 네, 정말 국자입니다.

서울 성수동 주물공장에서 500도 넘는 액체 아연을 국자로 떠서 10년 동안 금형 틀에 부었죠.
중 1을 마지막으로 학교에 간 적이 없었습니다.
엉망진창 맞춤법으로 시작했지만, 네티즌들이 지적하면 하나하나 고치고 배웠습니다.
학벌도 족보도 없이 평지돌출한 이 청년 작가의 소설은 묘하게 매력적이었고,
첫 책 '회색인간'은 중쇄(重刷)를 거듭했죠.

이 청년 작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 없는 젊은이라면 학교에 있어도 허송세월, 반대로 참된 젊은이라면 학교 밖에서도 배운다.

유리천장이 아니라 유리바닥이라는 조어가 있습니다.
성차별, 인종차별로 고위직으로의 길을 막는 게 전자라면,
자녀가 추락하지 않도록 부모가 막아주는 장치가 후자죠.

필기시험 한 번을 치르지 않고 고려대부산대 의전원에 들어간 법무장관 후보자의 딸
요즘 논란 한가운데 있습니다.
착취불평등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다른 아이의 기회를 빼앗는 것 역시 불평등을 만들죠.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를 돕고 싶어하지만, 다른 아이의 기회를 빼앗거나 해를 끼쳐서는 안 될 겁니다.
그런데도 많은 엘리트의 자식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왔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죠.
오늘의 커버스토리 종목을 빌리면 3루에서 태어나놓고 자신이 3루타를 친 것처럼 구는 겁니다.

택배로 생활비 벌며 마침내 프로 1군이 된 야구 선수와
10년 넘게 주물공장 국자를 잡고 소설을 썼던 작가를 생각합니다.

뜻깊은 추석 보내시기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6/20190906019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