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9.07 03:12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 충격에 빠진 사람들이 노학자에게 물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지,
운전사도 번역가도 변호사·요리사도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이어령 선생의 답변에는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두렵지 않다는 학생이 등장했다.
바둑을 공부했던 학생은 동네의 바둑 천재 형님을 한 번만 이겨보는 게 소원이었다.
학교 수업도 등한시한 채 바둑에만 열중하던 어느 날, 드디어 형님을 이기게 된 그 학생은
그때 자신감으로 원하는 대학에 간 후, 우연히 형님을 다시 만나 얘기했다.
"형님 덕분에 내가 대학에 합격했잖아. 그때 내가 이겼잖아.
그런 얘길 하니까 형이 난처한 표정으로 그러는 거예요. 야, 내가 져준 거야."
그 학생은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가 아니라,
일부러 져줄 줄 아는 형에게서 위대함을 보았다고 말했다.
"말과 경주하면 인간이 집니다.
"말과 경주하면 인간이 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과 직접 경주하는 게 아니라, 말에 올라타야 이기는 거예요.
질문을 바꿔야 해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을 인간이 과연 올라탈 수 있느냐….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겁니다.
그 사람은 인간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에 대해 아픔을 같이 느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일 거예요."
우리는 종종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종종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가령 인간은 왜 사느냐 같은 질문이 그렇다.
'왜'라는 건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하지만 의미보다 '나'라는 존재가 먼저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로 바뀔 때 삶을 더 풍성하게 확장한다.
노학자가 말한 말 위에 올라타 통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노학자가 말한 말 위에 올라타 통제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언제 달려야 할지, 어디로 달려야 할지, 어떤 속도로, 어떻게 달려야 할지는
결국 '답'이 아니라 '질문'의 영역이다.
어쩌면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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