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7.31 03:01

동양의 옛 책에서 그림을 언급할 때는 언제나 '그림을 읽는다(讀畵)'고 했다. 애초부터 동양의 그림은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언급할 때는 본다는 의미의 글자인 '시(視)' 또는 '간(看)' 등의 글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읽는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의미다.
동양의 예를 먼저 들어서일 뿐 어느 문화권에서건 그림, 곧 이미지는 그 문화권에 대한 지식 없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미술사 분야 가운데 작품의 상징성, 우의성, 속성 등 어떤 의미를 갖는 도상을 비교하고 분류하는 도상학(圖像學·iconography)이 있다.
도상학의 제창자 파노프스키는 "부시맨은 '최후의 만찬'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보고 아마도 흥겨운 저녁 파티를 떠올릴 것이다"는 간결한 문장으로 이미지와 그 메시지 해석을 위한 문화적 코드 이해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영화화된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현대가 이미지의 시대라는 것은 착각이고 현대야말로 문자의 시대이고 중세가 이미지의 시대라고 설파했다. 중세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그림과 같은 조형물을 통해 정보가 교환되고 의미가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던 시절에 성경의 내용이나 성인들의 행적이 그려진 성화(聖畵·icon)는 신의 은총 혹은 계시의 생생한 증거로서 훌륭한 선교 교재가 되었고, 불교 문화권에서 사찰 담벼락이나 전각에 그려진 불화 역시 같은 용도로 기능했다. 전근대 시기에는 서양이건 동양이건 대개의 사람이 문맹이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동양의 예를 먼저 들어서일 뿐 어느 문화권에서건 그림, 곧 이미지는 그 문화권에 대한 지식 없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미술사 분야 가운데 작품의 상징성, 우의성, 속성 등 어떤 의미를 갖는 도상을 비교하고 분류하는 도상학(圖像學·iconography)이 있다.
도상학의 제창자 파노프스키는 "부시맨은 '최후의 만찬'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보고 아마도 흥겨운 저녁 파티를 떠올릴 것이다"는 간결한 문장으로 이미지와 그 메시지 해석을 위한 문화적 코드 이해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영화화된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현대가 이미지의 시대라는 것은 착각이고 현대야말로 문자의 시대이고 중세가 이미지의 시대라고 설파했다. 중세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였기 때문에 그림과 같은 조형물을 통해 정보가 교환되고 의미가 전달되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던 시절에 성경의 내용이나 성인들의 행적이 그려진 성화(聖畵·icon)는 신의 은총 혹은 계시의 생생한 증거로서 훌륭한 선교 교재가 되었고, 불교 문화권에서 사찰 담벼락이나 전각에 그려진 불화 역시 같은 용도로 기능했다. 전근대 시기에는 서양이건 동양이건 대개의 사람이 문맹이었기 때문인데 이제는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일사일언] 그림을 읽다](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7/30/2019073002736_1.jpg)
글을 읽는 것이 권력이었던 시대에서 모두가 글을 읽게 된 시대로의 전환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은 정보의 수동적 소비자를 넘어 적극적 생산자까지 되는 등 과거에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놀라운 변화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렇지만 되묻고 싶다. 진정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해졌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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