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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아들의 실패한 反日

colorprom 2019. 7. 31. 15:24



[특파원 리포트] 일곱 살 아들의 실패한 反日


조선일보
                         

 

입력 2019.07.31 03:14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기자의 일곱 살 둘째 아들은 일본 만화 캐릭터 피카추의 팬이다. 둘째는 첫 유치원을 일본 오사카에서 다녔다. 기자가 지난 2015년 일본에서 연수할 때 유치원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도 '밥 한 그릇 더 주세요'는 "오카와리(お代り·'한 번 더 먹는다'는 일본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둘째의 일본 사랑은 기자가 워싱턴으로 발령받은 뒤에도 계속됐다.

그랬던 둘째가 한글을 배우고 위인전을 읽으면서 달라졌다. 이순신·유관순·안중근 위인전 등을 읽고 나더니 올 초 "일본이 한국을 너무 많이 괴롭혔다. 일본 사람과 친구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 나름대로 '소신'을 가진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피카추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둘째의 브레이크 없는 반일(反日) 감정이 유치원 교실 속으로 들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5월쯤 같은 반 일본인 친구에게 "너와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어!"라고 소리를 친 것이다. 말리는 선생님한테도 버릇없이 행동했다. 결과는? 부모 소환이었다.

선생님은 둘째를 앞에 놓고 "역사 문제는 슬픈 일이야. 그렇지만 같은 반 친구와는 잘 지내야 하는 거야"라고 타일렀다. 워싱턴 주변의 유치원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외교관과 주재원들의 아이들이 다닌다. 과거사 문제로 어느 한편을 들 경우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럼에도 둘째는 일본 친구와 놀지 않겠다는 '소신'을 꺾지 않았다. 다만 과거엔 당당히 소리치던 녀석이 이제 일본 친구를 보면 슬슬 피해 다닌다. 기자는 둘째를 보면서 어쩌면 한국인에게 반일이란 DNA에 새겨진 감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가 일본에 역사적으로 당한 고초가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일본 아베 정권의 수출 보복 조치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치졸하다. 문제는 그런데도 국제사회에서 과거사란 민감한 문제 앞에서 한국 편에 서 줄 나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조차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때문에 둘째의 선생님처럼 "그래도 잘 지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미 국무부나 의회가 한·일 갈등에 대해 하는 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일 삼각 공조의 균열에 북한과 중국·러시아만 뒤에서 웃을 뿐이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인은 한·일 갈등 속 '거북선 횟집'에서 밥을 먹은 것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일곱 살도 분노하게 할 수 있는 반일 감정을 어떻게 관리할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과거는 잊지 말아야 하지만 이 때문에 판이 깨지려 할 때 가장 억울한 것은 한국이다. 기자가 선생님 앞에 불려가야 했듯, 피해를 본 한국이 오히려 국제사회에서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30/2019073002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