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관련 일러스트](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7/31/2019073102936_0.jpg)
스피노자(1632~1677)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도덕 철학자, 사회 비평가, 성서 주석가, 히브리어 문법 연구자, 유대교의 배교자, 실패한 무역상, 렌즈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는 근대 맹아기이자 급진적 시대에 '광학의 가장 아름다운 비밀'을 탐구했고, 동시에 '진리의 명징성'을 추구하는 철학자의 길을 걸었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 교육과정을 마친 뒤 14세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무역 회사에 들어가 일을 거들었다. 1654년 공증서에는 스피노자의 직업이 '암스테르담에 있는 포르투갈 상인'으로 기재되었다. 그는 암스테르담의 다문화적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사유하고 자유 의지를 추구하는 교양인으로 살기를 바랐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렌즈 세공사였다. 렌즈를 깎고 다듬는 작업은 고독한 일이었다. 그는 수학과 철학을 연구하며 생계를 꾸리려고 렌즈와 광학 기구를 만들었다. 1661년 가을엔 품질이 뛰어난 망원경과 현미경을 제작했다. 당시 한 의사는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스피노자가 만든 1등급 현미경'으로 림프의 혈관 다발을 관찰했다고 썼다.
유대인 공동체에서 탈무드를 배우며 자랐지만 어쩐 일인지 '탈무드·토라' 학습 기관에서 쫓겨나고, 유대교에서도 이탈했다. 스피노자는 '무신론자로 모든 종교를 비웃는, 공화국에 해로운 존재'로 낙인찍혔지만 그런 비난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광학 기계 제작 업자로 명성을 얻고, 신·인간·우주에 대해 사유하고 당대의 '진리'를 비판하는 책을 썼다.
스피노자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직업 특성상 유리 가루를 많이 마셨다. 그런 탓에 호흡기 질병을 얻어 자주 기침하고 신열이 높았다.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열을 내리려고 사혈(瀉血)을 하며 역작 '에티카'를 썼다. 1677년 2월 21일 스피노자는 하숙집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에티카'는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