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냉철한 판단이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천명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끌어냈다. DJ 묘에서 150m를 더 내려가면 ‘우남 이승만 박사 내외분의 묘’가 기다린다.
7월 19일은 서거 54주기, ‘대통령 문재인’의 조화가 눈에 띈다.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고, “일본에 강도당한 것은 반드시 반환받겠다”며 청구권협상을 시작한
이승만의 기운이 느껴진다. 김영삼(YS)은 세 대통령 묘역과 조금 떨어진 능선에 잠들어 있다. DJ와 같은 크기의 묏자리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길을 선택할 것입니다”는 그의 어록이 적힌 ‘김영삼 민주주의 기념비’가 곁을 지킨다.
YS는 대일 외교에서 파격적 노선을 취했다.
취임 직후인 93년 3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일본에 요구하지 않고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를 구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저런 반대로 실행에 실패했지만 그의 독자적인 자구 조치 시도는 의미가 크다. ‘현충원 대통령’들은 일본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다.
위안부, 독도, 역사 왜곡, 망언, 강제징용 문제들에서 번번이 충돌했지만 일보 전진했다.
이승만의 결기, 박정희의 실용, 김영삼의 자구, 김대중의 미래 지향은 값진 유산이다.
이승만처럼 일본의 침략 근성을 경계하면서, 박정희처럼 일본의 실체를 쿨하게 인정하고,
YS처럼 구차하게 손 벌리는 거 접고, DJ처럼 미래에 무게 둔 대일 외교를 해보라고
죽은 대통령들은 속삭인다. 48년 정부 수립 당시 한국은 세계 117위의 최빈국이었다.
50 달러 수준이던 한국의 1인당 GDP는 2018년 3만 달러를 넘어 600배가 늘었고,
3만9000 달러의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국(1조6200억 달러)과 일본(4조9700억 달러)의 GDP 격차도 3분의 1로 좁혀졌다.
전 세계 7개국뿐인 30-50클럽에 진입한 선진국이 됐다.
일본의 사죄와 배상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가 주체적으로 책임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징용·위안부 피해자의 땀과 피눈물을 어떻게 돈으로 어떻게 환산할 수 있겠나.
하지만 일본의 도덕적 책임을 묻되
우리 돈으로 피해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해 보상과 명예 회복을 해주는 YS식 방법이 있다.
일본의 억지처럼 개인 배상이 소멸했다거나, 한국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거나,
일본의 비겁한 경제 보복에 굴복하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적 자존심과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식민 지배의 긴 악몽을 끊는 길이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고달픈 나라다.
핵을 보유한 북한, 우리를 조공국으로 여기는 중국, 독도까지 온 러시아라는 적대적 이웃이 위협한다.
친일로 기운 트럼프의 미국은 으르렁대는 한·일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들지 의문이다.
이런 마당에 일본과도 척지려 한다.
“쫄지 말자”고 거품 물며 죽창 들고 의병 일으키자는 관제 애국 선동은 자기비하일 뿐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일본의 보복에 꼼짝없이 당한 ‘기해왜란’이 될지,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원년이 될지 기로에 섰다.
미우나 고우나 일본을 품으려 했던 현충원 대통령들의 고뇌와 지혜를 이 정부 사람들이 새겨봐야 한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죽은 대통령들과의 대화
[시론] 우리는 일본과 어떤 전쟁을 벌일 것인가
조선일보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
입력 2019.07.26 03:14
日 침략사, 우린 좋아할 수 없어… 밀월 관계 美日도 원한의 역사 지혜로 일군 세계 10위권 경제, 내실 다지는 자신과의 전쟁 해야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순풍과 역풍을 거쳐 왔지만 지금과 같은 시기는 없었다. 일본은 우리에게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고, 우리는 이에 분노하며 결기를 다지고 있다.
역사 문제로 인해 우리 국민은 대체로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피해 의식은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16세기 말 일본은 중국을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유린했고, 아무런 힘이 없었던 조선은 제대로 된 전투도 치러보지 못했다. 그 결과, 많게는 100만으로 추정되는 인명 피해를 보았다. 왜군은 전과를 자랑하고자 18만5000여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 갔다니 그 참혹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100만명이 넘는 징병과 징용도 큰 아픔이지만, 많게는 20만명에 이른다고 하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비협조로 정확한 진상 파악도 못 하고 있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 바깥 세계를 보면 과거의 악연(惡緣)을 딛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간 사례도 없지 않다. 요즘 사이가 부쩍 좋아진 것으로 보이는 미일 관계가 그렇다. 미국은 19세기 이전만 해도 일본을 잘 몰랐고 '천황'을 받드는 일본인들을 미개인처럼 여겼을 정도다. 일본이 진주만을 침공하고 자국군 수천 명이 사망하자 반일 감정은 극에 달했다. 워싱턴의 벚꽃나무는 모두 잘라버렸고, 일부 단체는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사냥해도 좋다는 면허증을 내줄 정도였다. 미국 정부는 12만명에 이르는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로 수용소에 가두어 버렸다. 아직도 미국 대통령들은 진주만을 방문해 2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945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6만4000명이, 천황이 항복 문서를 준비하던 8월 9일에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3만9000명이 사망하고 방사능 후유증으로 70여만 명이 희생되었다. 미국이 황인종을 상대로 핵실험을 했다며 일본 내에서는 반미 감정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에 안보를 맡기며 세계 3위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전쟁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든 평화 헌법을 개정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려 들고 있다. 이런 일본의 행보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미국과 긴밀한 협의 아래서 추진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일본의 역할 강화가 포함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한 팀으로 중국과 대치하는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는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 수 있다. 다가오는 폭풍우에 우리는 무슨 대책이 있는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하지만 역사에만 매달리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 과거사에 얽매이지 말고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일본과 협력과 경쟁을 해 나가야 한다. 역사를 삼키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것은 우리의 지혜와 노력 덕분이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전 세계에 나아가 다른 나라와 경쟁한 덕분이다.
일찍이 클라우제비츠는 '정치가와 지휘관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판단은 그들이 시작하려는 전쟁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갈파했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전쟁 형태는 역사 전쟁이나 무역 전쟁이 아니다. 우리 내실을 다져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평화와 번영을 지킬 수 있는 자신과의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