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년 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 세상 올 텐데
그때를 걱정하는 건 석기시대 사람들이 우릴 걱정해주는 것 비슷
문제의 '300년' 관련 내용을 말했던 원자력 교수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문의했더니 자료를 보내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거북이 방사능'이다. 대표적인 것이 플루토늄이다. 반감기가 무려 2만4000년이나 된다. 따라서 10만년이 지나면 네 번의 반감기를 넘겨 처음 방사능의 대략 20분의 1 정도로 떨어지게 된다.
환경단체들에서 '10만년은 철저하게 보관해야 한다'고 할 때 염두에 두는 물질이 바로 플루토늄일 것이다.
그런데 방사능 물질의 붕괴가 느리다는 것은 뿜어내는 방사선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어느 물질이 수천, 수만년 방사선을 낸다는 것은 그 물질의 수명이 아주 길다는 뜻이지만
내뿜는 방사선이 아주 강하지는 않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 연료로 쓰는 우라늄 경우는 거북이 물질보다도 훨씬 느리게 붕괴가 진행된다.
우라늄 원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238은 반감기가 45억 년이나 된다.
지구가 생겨난 이래 겨우 한 번 반감기를 지났다.
반감기가 길기 때문에 천연우라늄에서 나오는 방사선은 아주 약한 편이다.
우라늄을 캐내는 광부들은 우라늄 붕괴로 생기는 라돈 때문에 특수 마스크를 써야 하긴 해도
우라늄 광석 자체는 맨손으로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300년 지난 사용후핵연료를 '손으로 만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과한 표현이라고 본다.
다만 사용후핵연료가 몇백 년 지나면 강(强)방사능 토끼 물질이 많이 소진돼
방사선 세기가 처음보다 상당히 약해진 상태로 봐야 한다.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윤종일 교수에 따르면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 독성은 원자로에서 꺼낸 뒤 1년 뒤엔 천연우라늄의 2000배나 되지만,
1000년 지나면 110배, 1만년이면 30배, 10만년이면 2배 수준으로 떨어진다.
수천 년 지나면 충분히 안심할 수준이 된다.
사용후핵연료를 지하 수백m에 넣어두고도 10만년이 지나기까지 걱정하며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월성원전을 방문해 사용후핵연료 건식(乾式) 저장장치들을 돌아봤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 옆에 딸린 수조에서 5년쯤 보관하면서 순환 냉각 장치로 열을 식힌 후
건식 저장고로 옮기게 된다.
5년 지나면 짧은 반감기의 강방사능 물질이 많이 사라진 다음이라 굳이 물을 순환시켜 냉각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저(低)발열 사용후핵연료는 강철통에 담아 발전소 건물 외곽 부지의 철근콘크리트 용기 속에 넣어두거나 특수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자연대류식 공기 냉각 방식이라서 따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이때 저장 용기 표면에 한 시간 몸을 대고 있으면 엑스레이의 10분의 1~5분의 1 수준 방사선을 쬐게 된다.
미국 과학자들은 저장 용기가 1100~5400년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최종적으론 부식 속도가 1만년에 1㎜라는 구리 용기에 옮겨 담아 500m 지하에 넣어두게 된다.
10만년 전이면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빠져나오던 때이고, 1만년 전은 땅에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던 때다. 원자력발전의 역사는 60여년밖에 안 됐다.
앞으로 200년, 300년 뒤 과학이 얼마나 발전해 있을 것이고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하다.
사용후핵연료의 1만년, 10만년 뒤를 걱정한다는 것은,
석기시대 사람들이 자기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수만 년 뒤 후손들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한다는 것만큼
비현실적 이야기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