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9.07.24 06:00 수정 2019.07.24 10:32 | 종합 23면 지면보기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 펴낸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알면 불교의 선(禪)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2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근처에서 이은윤(78)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총2권, 민족사)을 출간했다.
1972년부터 일간지 종교담당 기자를 했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교전문기자’ 타이틀을 달았던 인물이다.
그는 ‘현역 시절부터 벼르고 벼르던 일’을 퇴임한 후에 시작했다.
원고지 3200매를 손수 펜으로 꾹꾹 눌러가며 노장(老莊)과 선(禪) 불교의 소통을 풀어냈다.
"선불교가 품고 있는 단순함과 명료함은 현대사회의 창조적 직관과도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백성호 기자
선(禪)이 현대인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어떻게 쓰이나.
“한마디로 ‘심플함(Simplicity)’이다. 단순과 명료다.
요즘은 경영에도, 디자인이나 패션에도 선적인 코드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과 청바지에도 심플한 직관이 있지 않나.
그게 선의 속성이다.”
왜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선(禪)에 접근하나.
“인도의 선불교가 들어오기 500년 전에 이미 중국에는 노장 사상이 있었다.
인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중국화한 불교가 선종(禪宗)이다. 노장의 틀로 인도 불교를 해석한 셈이다.
그래서 노장과 선은 70~80%가 상통한다.
이처럼 노장과 선불교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다고 ‘선불교가 노장의 아류’라고 말하는 건 오류다.”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은 "노자의 무위자연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 마음의 작용을 일컫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노자.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7/24/372e8dbd-bf9b-4eb1-8e8b-550dc9eb9731.jpg)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은
"노자의 무위자연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 마음의 작용을 일컫는다"고 말했다.
사진은 노자. [중앙포토]
- 선(禪)에 녹아 있는 노자와 장자. 예를 들면.
“우리가 ‘서산대사’‘사명대사’하지 않나.
‘대사(大師)’라는 말이 ‘대종사(大宗師)’의 준말이다. ‘종단의 큰 스승’이란 뜻이다.
그런데 인도 불교 경전에는 ‘대종사’라는 말이 없다. 그건 ‘장자’에서 온 용어다.
『장자』 내편의 한 챕터 제목이 아예 ‘대종사’다."
- 또 다른 예도 있나.
"있다. 인도 불교는 진리를 ‘공(空)’이라 표현한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순야타’다.
중국인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그래서 인도의 ‘공(空)’을 중국 노장의 용어인 ‘무(無)’로 해석했다.
선불교에서 ‘무심(無心)’이라고 하지 않나. 그게 노장에서 왔다.
불교 수행을 일컫는 ‘도(道) 닦는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 선불교의 마조 선사는 "평상심이 도다"라고 했다.
- 책에서는 이걸 '종교개혁'이라고 불렀다. 왜 그런가.
"'평상심시도'는 무심한 가운데 자연의 질서를 따라 사는 삶이다.
이 평범한 진리가 동양사상의 가장 큰 특징인 '천인합일 사상'이다.
『장자』의 '대종사'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찌 내가 하늘이라고 일컫는 것이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라고 일컫는 것이 하늘이 아닌지를 알겠는가?
진인이 있은 후에야 참된 앎이 있다.'"
- 장자도 '평상심이 도'라고 말한 건가.
'"장자 역시 일상생활 외에 별달리 오묘한 진리가 없다는 메시지를 설파했다.
이 말은 마조 선사의 '평상심시도' 뿐만 아니라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과도 통하고, '신의 속성'을 본 따 인간을 빚었다는 기독교의 인간 창조론과도 통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가장 본질적인 개혁 아닌가."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은 "세속에 중생과 함께 머물면서 물들지 않는 게 선이다"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7/24/6a5d5e1e-14c1-4631-8d40-dc76cc67cbb1.jpg)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은 "세속에 중생과 함께 머물면서 물들지 않는 게 선이다"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그는 “선가(禪家)의 해탈과 노장의 초월은 실용적 측면에서 별 쓸모가 없는 것 같지만,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이 원고지 3200매에 직접 쓴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의 육필 원고. [사진 이은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7/24/a67a23f9-79e2-4946-8fd0-3dfbe850cd6e.jpg)
이은윤 전 금강불교신문 사장이 원고지 3200매에 직접 쓴 '노장으로 읽는 선어록'의 육필 원고.
[사진 이은윤]
- 노장에서 바라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가.
"『장자』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삶과 죽음은 각각 때를 만남과 순리를 따르는 것이니
편안히 받아들이면 즐거움과 슬픔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러한 장자의 생사관은 선불교의 '색공일여(色空一如)와 통한다.
삶과 죽음은 근원으로 돌아가면 그 당체가 공(空)하다. 같은 뿌리일 뿐, 아무런 차이도 구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분별심을 떠난 평상심이다.
노장과 선은 이렇게 통한다."
- 그럼 노장과 선(禪)의 차이점은 뭔가.
“노장은 세상을 피해 가는 도피와 은둔적 성향이 있다.
반면 선(禪)은 세속에서 중생과 같이 살면서도 물들지 않고 자기 본심을 지킨다.
그런데도 현실의 선불교가 산속에만 머물면서 노장적 속성을 띠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07/24/9270771d-8871-4420-904d-5e5cb1fcd8c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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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서산대사의 '대사'는 불교 아닌 노장의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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