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드라마가 너무해 (김은주, 조선일보)

colorprom 2019. 7. 18. 15:40



[一事一言] 드라마가 너무해

            김은주 외화번역가


            발행일 : 2019.07.18 / 문화 A25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요즘 저녁마다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20년 전 6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던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다.

            한 집 형제와 결혼한 두 자매 이야기인데, 재방송하는 걸 우연히 보다가 몰입하게 됐다.

            등장인물 중 나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 은주는 현대판 콩쥐 같은 캐릭터다.

            당차고 야무진 그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완벽한 큰며느리 노릇을 해내기 위해 아등바등 바쁘게 살아간다.

            반면 친정엄마가 공주처럼 키운 언니 금주는 시집 와서도 동생을 부려 먹는다.


            그럼에도 시어머니가 편애하는 건 금주다.

            검사 아들 짝으로 성에 안 차는 은주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고,

            춤꾼 아들에게 시집온 명문대 대학원생 금주는 과분한 며느리이기 때문.

            이름이 같아서일까 화면 속 은주의 고군분투가 내 일처럼 안타깝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드라마에서 불편하고 거슬리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은 몰상식하게 여겨지는 많은 일이 20년 전엔 당연한 일 혹은 미덕이었다는 사실을.


            젊은 시어머니는 큰며느리가 새벽에 출근하든 말든 살림을 그녀에게 맡기고 자신은 취미 생활을 즐긴다.

            간혹 집안 남자들이 청소를 거들지만 그야말로 어쩌다 도와주는 수준.

            그럼에도 은주는 휴일이면 손빨래에 유리창 청소까지 해가며 몸이 부서져라 헌신한다.

            보수적인 시할머니는 남편 쪽 서열을 따라야 한다며 언니에게 동생을 '형님'으로 부를 것을 강요하고,

            남자들은 가족 앞에서 수시로 담배를 피운다.

            강아지 안고 가는 여자를 불러 세워 "그 개 팔라"며 돈다발 내미는 장면도 있다.


            작가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불과 20년 전에 우리가 저랬나' 신기할 정도다.

            옛것 중엔 좋은 것도 있지만 버려야 할 것도 분명히 있다.

            지금 내가 당연하게 행동하는 일 중엔 훗날 부끄럽게 기억될 일도 많을 거라는 사실을 드라마는 일깨워줬다.

            또 있다.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좋은 쪽으로 바뀌어 왔다는 걸.



            기고자 : 김은주 외화번역가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97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