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바깥 세상

스페인 몰락 부른 '알함브라 칙령'

colorprom 2019. 7. 17. 15:34



[현미경] 스페인 몰락 부른 '알함브라 칙령'

스페인계 유대인들에겐 축복

    배준용 기자


    발행일 : 2019.07.17 / 국제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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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이사벨라, 유대인 추방… 금융·유통망 무너져 왕국 파산
    英 이주 유대인 후손 국적 회복… 브렉시트 관계없이 EU시민 자격

    500여년 전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령이 지금에 와서 그 후손인 스페인계 영국 유대인들에게 축복이 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되더라도 EU 국가와의 자유로운 왕래와 경제활동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을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스페인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은 아라곤 왕자 페르난도 2세와의 혼인과 '레콩키스타(Reconquista·실지 회복 운동)'를 통해 1492년 스페인 통일 왕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석 달 뒤 이사벨라 여왕은 '신성한 가톨릭 교리를 어지럽히는 유대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4개월 내로 스페인 왕국에서 떠나라'는 유대인 추방령을 발표했다.

    '알함브라 칙령'으로 불리는 이 유대인 추방령을 역사학계는 스페인 왕국의 몰락을 부른 결정적 계기로 평가한다. 칙령 이후 4만~10만명의 스페인·포르투갈계 유대인 '세파르디(Sephardi)'가 영국,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로 이주했다. 당시 스페인 왕국의 금융·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던 세파르디가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스페인 경제는 급속히 붕괴했고, 칙령이 발표되고 60여년 뒤인 1557년 스페인 왕국은 파산했다.

    알함브라 칙령으로 쫓겨나 영국에 터전을 잡았던 세파르디 후손들은 최근 역사의 보상을 받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를 앞두고 영국 국적 세파르디들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제정된 국적회복법을 통해 스페인·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고 최근호에서 전했다. 영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기 때문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해 놓은 영국인들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EU 시민권과 여권을 가지고 유럽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2015년 알함브라 칙령에 대한 역사적 반성 차원에서 국적 회복법을 제정했다. 국외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자신이 세파르디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면 스페인, 포르투갈 국적을 취득하고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세파르디들은 보통 지역 공동체를 이루며 거주하며 유대교 회당에 호적을 올리기 때문에 세파르디의 후손임을 입증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계보학자들에 따르면 영국 국적 유대인 28만여명 중 수만 명이 세파르디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적 회복법 시행 이후 전 세계에서 1만명 이상의 세파르디가 스페인·포르투갈 국적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세파르디의 국적 회복 신청을 돕는 이스라엘 기업 '캠퍼스'는 "고객 대부분이 영국 국적이며, 브렉시트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문의가 쇄도한다"고 밝혔다.
    기고자 : 배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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