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처음은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쓴 소포클레스다.
다음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주어진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더 좋은 사과를 많이 맺을 수는 있으나 사과나무에서 포도가 열릴 수는 없다.
성격은 깔린 철로와 같아서 인간은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요사이 과거를 반성한다.
할머니와 부친 성격을 많이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 작은할아버지 집에 갔다.
식사할 때 할머니가 자꾸 "많이 먹으라"면서 다 먹은 밥그릇에 밥을 더 얹어 주어서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황급히 "그래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라면서 자기 잘못이라는 듯이 위로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내보내 연설 대회에 간 적이 있다.
내용은 다 외우고 있었는데 청중 200명 앞에 섰더니 많은 시선에 압도됐다.
연설도 못 하고 울먹이다가 내려왔다. 그다음부터는 부친이 다시는 연설 대회에 내보내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 다른 사람의 강연이나 연설을 들으면서 몹시 부러워했다.
내게는 마이크를 잡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기회가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이름 있는 강연자로 꼽히게 되었다.
한 선배는 "가장 논리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강연을 한다"고 평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어딘가 모자라는 데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다.
김태길 교수도 80이 넘은 나에 대해
"김 교수는 철이 늦게 드는 편이라 오래 살면서 일할지 모른다"고 놀려주었다.
나도 인정한다.
지금도 나는 1~2년 전에 한 일을 후회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언제쯤 되면 철이 들지 모르겠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이 내게 "고마운 스승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100세까지 산 것밖에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 장점을 갖고 있다.
나는 철들면서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자랐다.
신앙은 누구에게나 '네 생애를 다 바쳐서라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고 가르친다.
사명 의식에 가까운 그 책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다시 태어나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존경하는 윤동주 시인 같은 친구들이 모두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