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100세가 되어도 고민한다,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김형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9. 7. 14. 15:17

100세가 되어도 고민한다,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7.13 03:00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일기]

[아무튼, 주말-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 이철원
서구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비극(悲劇)을 잘 쓴 두 작가를 기억한다.

처음은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를 쓴 소포클레스다.
오이디푸스 왕은 출생 때부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이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
부왕과 왕후는 물론 본인도 그 운명을 벗어나려 하지만 운명대로 되어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자멸의 길을 택한다.

다음 작가는 셰익스피어다.
그는 타고난 성격은 누구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햄릿'의 주인공 햄릿이 대표적이다.
성격은 제2의 운명이다.

한때 행동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장했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는 습관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려면 행동을 바꿔야 한다고.
행동을 바꾸는 길은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주어진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더 좋은 사과를 많이 맺을 수는 있으나 사과나무에서 포도가 열릴 수는 없다.

성격은 깔린 철로와 같아서 인간은 그 궤도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요사이 과거를 반성한다.

할머니와 부친 성격을 많이 물려받았다.


어렸을 때 작은할아버지 집에 갔다.

식사할 때 할머니가 자꾸 "많이 먹으라"면서 다 먹은 밥그릇에 밥을 더 얹어 주어서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할머니는 황급히 "그래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라면서 자기 잘못이라는 듯이 위로해 주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가 내보내 연설 대회에 간 적이 있다.

내용은 다 외우고 있었는데 청중 200명 앞에 섰더니 많은 시선에 압도됐다.

연설도 못 하고 울먹이다가 내려왔다. 그다음부터는 부친이 다시는 연설 대회에 내보내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어 다른 사람의 강연이나 연설을 들으면서 몹시 부러워했다.

내게는 마이크를 잡고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기회가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이름 있는 강연자로 꼽히게 되었다.

한 선배는 "가장 논리적이면서 설득력 있는 강연을 한다"고 평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어딘가 모자라는 데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다.

김태길 교수도 80이 넘은 나에 대해

"김 교수는 철이 늦게 드는 편이라 오래 살면서 일할지 모른다"고 놀려주었다.

나도 인정한다.


지금도 나는 1~2년 전에 한 일을 후회하는 때가 있다.

'나는 언제쯤 되면 철이 들지 모르겠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이 내게 "고마운 스승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100세까지 산 것밖에 없는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은 저마다 한 가지씩 장점을 갖고 있다.

나는 철들면서부터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자랐다.

신앙은 누구에게나 '네 생애를 다 바쳐서라도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고 가르친다.

사명 의식에 가까운 그 책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다시 태어나곤 하는지도 모르겠다.

존경하는 윤동주 시인 같은 친구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2/2019071201733.html


이재승(insoo****)2019.07.1319:07:12신고
조물주께서는 사람마다 다른 성덕을 하나씩 주셨다고 합니다
그 성덕이 나머지 모자란 부분들을 성화시키도록 함이죠
그래서 사람은 변해야하고 그 지향점은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진인구(inkp****)모바일에서 작성2019.07.1315:52:43신고
꽤 많은 사람들이 나이들었지만 철이 안듦을 자랑스레 말하는 것을 본다.
그들은 철듦을 기성 규범에 구속되는 것으로 여기고 철안듦을 영혼의 자유로움으로 규정한다.
이 100세 철학자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철이 들고 안들고 하는 것과 자유로운 영혼은 다른 것이다.
'철들면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완전한 해탈과 같은 것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친구의 96세 할머니의 장례식에 다녀 왔는데
상여군의 타령 중에 '철들자 저승길이네'라는 구성진 가락이 있었습니다.
인생을 정리하시는 모습이 장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권수철(k****)2019.07.1312:32:20신고
인생은 두번 살수 없기 때문에 100세를 살아도 시행착오를 피할수 없다.
인생을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한번 살수 있다면 아주 한번 더잘살아 보겠다고 다짐 하는 사람 많다.
무서운 마감시간 이라고 현재 이 댓글쓴 시간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원열(cys0****)모바일에서 작성2019.07.1311:40:25신고
탄허스님왈 오래사는것에 집착하지 말고 헌옷 벗어놓고 돌아갈 준비들도 좀 하고 살자 하지 않던가
생사불이 삶과죽음이 어디 둘이겠는가?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 부운멸이라.
철들면 묵은옷 벗어놓고 요단강넘어 수영할 준비들 하셔야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12/20190712017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