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식물 저승사자 (백영옥, 조선일보)

colorprom 2019. 6. 22. 18:52

[백영옥의 말과 글] [104] 식물 저승사자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입력 2019.06.22 03:12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생명이 있는 것을 선물 받을 때가 있다.
대개 작은 화분들인데 고맙지만 난감한 경우도 있다. 내가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살아있는 것을 타인에게 선물하지 않는다.

이제 식물 옆에 '반려'라는 말이 꽤 자연스러워졌다.
아예 '동거 식물'이라는 이름까지 붙인 책도 나왔는데, 특히 눈길을 끈 건 정수진의 책 '식물 저승사자'였다.

책 제목을 보자마자 내가 죽였던 많은 식물들이 생각났다.
어떤 건 말려 죽이고, 어떤 건 썩혀 죽였으니 말을 말자.
내겐 '율마'와 '로즈메리'가 그렇다.
허브는 '노지'에서는 잘 자라는 식물인데 반해, 환기가 힘든 실내 환경에선 키우기 힘들다는 건
수많은 로즈메리를 잃은 후에 알았다.

모든 것은 적당히 과하지 않게라는 중용의 덕은 식물을 키우며 깨달았다.
햇빛이 필요하지만 과하면 잎 전체가 화상을 입기도 하고,
물 주기로 사랑을 표현하는 주인을 만나 뿌리가 썩어 가기도 한다.
식물에게 바람과 햇빛이 필요하다지만 그 적정량은 식물마다 모두 다른 것이다.

"나는 나의 로즈메리와의 대화에서 실패한 게 틀림없다.

그녀는 내게 물을 청했으나, 나는 비료를 주었고,

그녀는 내게 조금 더 많은 바람과 햇볕을 구했으나,

나는 내 두통을 위해 그녀를 어둑한 내 침대 구석에 몰아넣었다.

오늘 아침, 그녀가 이파리를 늘어뜨린 채 죽어 있었다."

생화학 박사인 다그니 케르너'장미의 부름' 문장을 읽다가

죽은 로즈메리 옆에서 슬픔을 느끼던 내가 떠올랐다.

로즈와 메리. 이름이라도 붙여주면 오래 살까 싶어 정성을 들였던 쌍둥이 화분 '로즈와 메리'는

그렇게 나를 떠났다.

난을 키우고 화초를 가꾸는 게 중장년층의 취미라 여기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플랜테리어(plant+interior)'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식물에 대한 관심이 광범위해졌다.

외롭고 헛헛하지만 개나 고양이를 돌볼 힘까진 도무지 낼 수 없어,

무심코 들였던 화분에 위안을 받는 청춘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1/20190621035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