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난봉꾼 마틴 루서 킹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colorprom 2019. 6. 20. 17:21



[분수대] 난봉꾼 마틴 루서 킹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지난달 말 공개된 7800단어 분량의 글이 있습니다. 한 지도자에 대한 고발문입니다.

이에 따르면 종교인인 그는 도시마다 통정하는 여인을 둔 난봉꾼이었습니다. 40명이 넘었습니다.

때론 난잡한 모임도 했습니다.

동료 종교인이 부적절한 요구를 뿌리치는 여인을 성폭행할 때도 그는 지켜봤을 뿐입니다.

때론 웃고 때론 말을 보태며 말입니다.
 
맞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입니다.

글이 사실이라면, 모두가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꿈꾼 그는 실상 ‘죄인’이었습니다.

민권 운동계의 하비 와인스타인이었던 겁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저자는 킹 목사의 전기를 써서 1987년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입니다.

이번엔 미 연방수사국(FBI)이 공산주의자들을 감청하는 과정에서 채록한

킹 목사 녹취록의 발췌본을 사료로 삼았답니다.

지난해 공개된 자료입니다.


킹 목사를 흠모했던 저자는 FBI의 불순한 행태(도청)를 고발하려다

되레 킹 목사를 고발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자, 이로써 20세기 미국의 도덕적 토템은 쓰러지는 걸까요?

FBI의 의도는요?

주장의 폭발성·민감성 때문에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는 물론이고 영국의 가디언은 저자의 투고 제안을 뿌리쳤다지요.

그렇다고 외면한 게 옳았을까요?


글은 결국 지난달 말 영국의 작은 잡지에 실렸습니다.
 
이후 전개되는 논쟁을 보며 다시 느낍니다.

흠이 있는 이도 옳은 일을 할 수 있고

옳은 일을 했음에도 대단한 흠이 있는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인간성은 복잡하며 인간계도 복잡합니다.

오로지 흑, 오로지 백은 가상현실(때론 진영 사고)에서나 존재하지요.

누구나 판관이 될 수 있지만 제대로 판단하기란 어렵습니다.

겸허할 일입니다.


그나저나 킹 목사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난봉꾼 마틴 루서 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