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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합리적 개신교 목소리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6. 19. 15:08


    

[김한수의 아웃룩] 합리적 개신교 목소리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조선일보
                         

               

 

입력 2019.06.19 03:14

1989년 탄생 한기총, 과거 '개신교계 보수' 목소리 대변
2006년 사학법 개정 반대운동 주도… 규모·영향력 절정
금권선거·이단 논란에 주요 교단 이탈… 전 목사 '막말' 결정타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이른바 '막말 파문' 때문이다.

전 목사는 지난 5일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종북·공산화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연말까지 하야(下野)하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은 연말까지 스스로 걸어 나오든지 박근혜와 감방을 교대하라'(11일 회견)는 주장을 거듭했다.

그의 발언은 정치권을 비롯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이어
18일 개신교 원로들의 비판을 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 목사의 이런 발언에 대해 보수적 목회자들조차
"너무 거칠다" "지금의 한기총은 개신교계를 대표하지 못한다"며 호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한기총을 설명할 때면 항상 '한국 개신교계 보수 시각을 대변하는'이라는 수식이 붙곤 했다.
한기총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개신교 대표 연합 기관으로 출발

한기총이 탄생한 것은 1989년 12월.
사회적으론 민주화와 올림픽 성공, 개신교의 급성장세가 두드러지던 시기였고,
1984년 한국 교회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연합 활동이 이뤄진 직후였다.

사회와 교계의 열기는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연합 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로 이어졌다.
당시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교계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에 보수적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결집해 새 기구를 만든 것.
중심엔 교계를 대표하는 '어른' 한경직(1902~2000) 목사가 있었다.
교계 원로·중진들이 모였고, 교단 36곳과 기관 8곳이 참여한 한기총이 창립됐다.

분열하기만 하던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이런 연합 기관은 처음이었다.

한기총은 설립 취지문에서 "이제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서
국내외 문제와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안에 의연히 대처하는 본래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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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 보수의 시각을 대변했던 한기총이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문 대통령 하야' 발언으로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왼쪽부터 한기총의 산파 역할을 한경직 목사,
2006년 한기총이 앞장선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전광훈 목사.
/조선일보DB·뉴시스
초기부터 활동은 활발했다.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 '정직 절제 사랑 실천 운동'을 벌였다.
1992년 미국 LA 폭동으로 한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자
LA와 샌프란시스코의 흑인 목회자를 한국으로 초청해 우호 행사를 열었고,
1990년대 중반 북한에 대기이 발생하자 식량과 겨울 옷가지 보내기에 나섰다.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챙기는 한편으론 북한 교회 재건 운동에 앞장섰고
1999년엔 북한 난민(탈북민) 보호 유엔 청원을 추진해 1000만명 서명을 받기도 했다.

기독교 교도소 설립 운동을 펼쳐 소망교도소 설립이라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 구심점

한기총이 사회적으로 가장 이목을 끈 것은 2006년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이었다.
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고 목회자와 장로들이 삭발하고 단식했다.
결국 당시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교계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한기총이 주목받으며 가입 교단도 급증했다.
이 무렵엔 회원 교단이 60여 개, 기관이 20여 개에 이르렀다.
부활절 연합 예배를 NCCK와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했으며
NCCK와 통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의 일원으로 7대 종단 지도자들과 함께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도 초대됐다.
여야 대표, 대선 주자, 장관 등은 신임 인사차 한기총을 예방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당시 한기총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찾아오겠다는 정치인과 관료, 후원하겠다는 교회가 줄을 섰다"고 했다.
한기총의 전성기였다.

금권 선거, 이단 논란으로 쇠퇴

집중된 관심은 부작용을 낳았다.
대표회장 선거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2010년을 지나면서 금권 선거 시비가 터져 나왔고, 회원 교단 가운데 이단 시비가 불거졌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기총 창립 당시 중심축이었던 예장 합동예장 통합 등 주요 교단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2012년엔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이 설립됐고,
2017년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주요 30개 교단이 회원으로 가입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출범했다.

최근엔 주요 교단 중 마지막까지 한기총에 남았던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속한 기하성 교단까지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주요 교단은 다 빠지고 문패만 남았다'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관심의 공백 상태'에서 전 목사가 등장했다.
지난 1월 대표회장에 취임한 전 목사는 2004년부터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네 차례 총선에서 국회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한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건전한 보수 개신교 대변 기관 없어

개신교계에서는 전 목사의 막말 파문에 대해
"전 목사의 거친 언사 때문에
정작 합리적인 개신교 보수의 목소리마저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교연이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이 이런 시각을 잘 보여준다.
성명은
"정부가 역점 시행하는 정책과 방향이 미래보다는 과거에 머무르고,
이로 인해 국민적 갈등이 야기되는 모습을 보며
실망과 탄식을 넘어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과 주장'은 문제이지만 전 목사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종교계조차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한기총이 설립 후 사회적 주목을 받은 것은
세상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비전을 제시하고 앞장설 때였다.
그 뒤엔 어른들과 헌신적인 청년들이 있었다.
건전한 개신교 보수의 대변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보수와 진보의 멋진 경쟁은 비단 개신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8/20190618035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