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안동 하회마을서 인문 강연
"네가 침 뱉으면 나는 가래침 뱉겠다는 게 요즘 세상 모습… 이육사는 전통서 혁명 도모"
"우리 사회는 요즘 하루도 안 빼놓고 악다구니, 쌍소리, 거짓말, 쓸데없는 소리로 날이 새고 진다.
몇 년째 난리 치고 있다."
소설가 김훈이 1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강연을 통해 한국 사회를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경북도청이 주최한 '백두대간 인문 캠프'에 강사로 나와
청중 700명이 모인 가운데 하회마을의 전통문화를 풀이하다가
"이 마을이 수백 년 쌓아온 덕성과 가치를 오늘의 한국 사회가 상실해가고 있다"며 현실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여름 무더웠는데,
우리는 어느 정치인의 '점'이 있느냐, 그것을 염색했느냐 뺐느냐 하며 지지고 볶고 했다"며
"이런 어수선하고 천박한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네가 침을 뱉으면 나는 가래침을 뱉겠다는 게 요즘 세상"이라는 것.
김훈은 경북의 유교 문화와 하회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귀감(龜鑑)으로 꼽았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서로 부닥치지 않고 약간 비스듬하게 외면한 듯이 자리 잡고 있다.
길도 집의 대문으로 곧바로 향하지 않고 굽이쳐서 돌아간다.
인간과 인간, 집과 길이 서로 양보하면서 그 간격 위에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조선 시대 하회마을엔 유교(儒敎)와 무교(巫敎), 양반과 평민이 공존했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서로 단절되지도 않고 그 관계에 매몰되지도 않으면서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는 마을을 이뤄왔다.
퇴계 이황은 자연의 조화로운 성정을 배워서 인간의 마을에 그러한 아름다움을 실현하려고 했다.
하회마을이 그런 마을이다."
김훈은 "하회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경상북도에서 항일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며
"안동을 비롯한 경북의 작은 마을에서 항일 운동이 격렬했던 것은
유림(儒林) 사대부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고 강조했다.
"안동의 개혁적 유림들은 모든 토지와 기득권을 포기하고 재산을 정리해서 만주로 이주했다.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짓고 농토를 일구며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었다.
이것은 전통의 힘을 통해 현실을 개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육사 시인은 퇴계의 14대 후손이다.
그는 직업 시인이 아니라 직업 혁명가였다.
그는 유가적 가치관의 전통 위에서 혁명을 도모하다가 애석하게 젊어서 돌아가셨다."
김훈은 하회마을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이제 이 마을에 와서 느끼는 문제는
'우리가 과연 전통의 힘으로 우리 현실을 개선하고 개혁할 수 있을까'라는
고통스러운 질문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라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내 개인적 생각은
전통의 힘, 보수적인 것의 힘 그 안에 우리 미래를 열어젖힐 수 있는 힘의 바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의 힘을 근대화 동력에 연결시키는 일에 소홀했거나 등한시한 채
근대화라는 것이 반드시 전통을 박멸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 생각을 오랜 세월 실천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혼란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