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과수' '국수' (윤영신 위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5. 14. 17:58



[만물상] '과수' '국수'


조선일보
                             
             
입력 2019.05.14 03:16

19대 대선에서 비호남권 시·도 중 문재인 대통령 득표율이 가장 높은 곳은 '공무원 도시' 세종시였다.
문 대통령은 51%가 넘는 득표율로 15~21%에 그친 경쟁자들을 압도했고,
이는 공무원과 그 가족들의 열렬한 지지를 보여줬다.
세종시는 세종시를 만든 노무현 계열 정당이 항상 강세를 보이는 곳이다.
공무원이 대선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건 자신들의 인사권자를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문 대통령이 내건 선거 공약은 친(親)공무원적이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식 성과연봉제에 반대한다"고 했다.
공직 사회는 경쟁 시스템을 싫어한다.
그걸 없애겠다는 데 반대하는 공무원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17만명이 넘는 공무원 증원약속했다.
'관료 천국'을 만들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만물상] '과수' '국수'
▶정권 출범 6개월 후 관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권에 안 좋은 보도가 나올 때마다 청와대 특감반공무원들을 덮쳤다.
관련 문건과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겠다며 외교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문자 메시지와 통화 내용, 사진 등을 탈탈 털고 직접 대면 조사까지 했다.
사생활과 인권도 무참히 짓밟혔다.

▶작년 말 기재부 사무관 신재민씨가 청와대의 적자 국채 발행 외압 의혹 등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새로운 업무 습관이 알려졌다.
신씨는 당시 "기재부 안에는 상황을 시간대별로 작성한 비망록이 있다"
"정권이 바뀌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은 자세히 기록해두라는 선배 공무원의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신재민 사건' 후 공무원들의 방어 본능은 더 심해졌다.

▶실제로 일부 공무원은 보고서를 윗선에 올리면서
'과수'(과장 수정) '국수'(국장 수정) '/과장 지시' '/국장 지시' 같은 표기를 해서
해당 정책의 실제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남겨놓는다고 한다.
윗사람 지시를 녹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중에 '적폐'로 몰려 처벌받는 상황에 대비한 증거물이다.

며칠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모르고
관료들을 거의 바보 취급하면서 '복지부동'을 비난한 것이 화제다.
"(정권 출범) 2주년이 아니라 마치 4주년 같다"고도 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가면서 한국의 엘리트 공무원들까지 '지방화'했다는 자조가 많았다.
거기에다 이제 '휴대폰 압수 대비'와 '정권 교체 리스크'까지 고려해야 한다.

공무원의 사명감과 자부심은 점점 옛날 얘기가 돼가고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3/20190513026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