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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유물 '부여 석조'

colorprom 2019. 5. 22. 15:32



"이것이 부처님 밥그릇"

조선일보
  • 허윤희 기자
    •          
    입력 2019.05.22 03:01 | 수정 2019.05.22 07:44

    7세기 유물 '부여 석조'
    연꽃 관상용으로 알려졌지만 부처님 밥그릇 형상화한 불교 작품이란 새 주장 나와

    부여 석조(보물 제194호). 높이 168㎝, 최대 지름 198㎝.
    부여 석조(보물 제194호). 높이 168㎝, 최대 지름 198㎝. /한정호 교수
    '무엇에 쓰이던 유물일꼬?'

    국립부여박물관 로비에는 독특한 모양의 대형 돌 조각이 전시돼 있다. 도르래 바퀴 모양의 받침대 위에 둥근 사발을 얹어놓은 듯한 7세기 유물 '부여 석조'(扶餘 石槽·보물 제194호)다. 원래 부여현 동헌(東軒·조선시대 관아 건물) 앞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옮겼다고 전한다. 동헌이 있던 관북리 일대는 백제 사비시대 궁궐지로 추정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석조의 용도에 대해 당시 왕궁에서 쓰던 석련지(石蓮池·돌로 만든 연꽃 모양의 못)로 추정해 왔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사이트에선 '왕궁에서 연꽃을 심어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 백제시대 유물'로 소개한다.

    그런데 한정호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부여 석조는 왕궁에서 쓰던 석조가 아니라 부처님 밥그릇[鉢盂·발우]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란 주장을 내놨다. 한 교수는 최근 열린 한국미술사학회 학술대회에서 "부여 석조의 높이가 168㎝로 연꽃 관상을 위해 제작했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높고, 보편적으로 별도의 연못을 마련하는 왕궁에 여름 한철 관상용으로 연꽃을 심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일본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에 전래하는 금동발우(金銅鉢盂)와 형식과 기형이 유사하다"고 밝혔다.

    '부여 석조'의 구연부를 확대한 사진. 4겹의 테두리가 뚜렷하게 보인다./한정호 교수
    가장 큰 근거는 구연부(아가리)에 있는 4겹의 테두리. 당나라 승려 현장이 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사천왕이 바쳤다는 발우가 나온다. "(…) 이때 사천왕이 4방에서 다가와 각자 지니고 있던 금발우[金鉢]를 바쳤다. 부처께서 묵묵히 계시면서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이어서 은·유리·진주 등으로 만든 발우를 올렸으나 하나도 받지 않으셨다. 마침내 사천왕이 돌로 만든 발우를 바치니 모두 받으셨고, 차례로 포개니 하나의 발우가 됐다. 이로 인해 바깥쪽에서 보면 4개의 테두리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네 개의 발우를 포개서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4겹의 테두리가 특징이라는 것이다.

    부처님 발우를 숭배하는 봉발 신앙은 간다라 지역에서 성행했다. 간다라 불교 조각 중 불발 (佛鉢)을 표현한 사례가 60여 점 알려져 있는데, 구연부 테두리를 4겹으로 표현한 공통점이 있다. 한 교수는 "이 부여 석조에도 4겹 테두리가 분명하게 표현돼 있다"며 "부처님의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로서 백제 미륵신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이자 간다라 봉발 신앙과 조형이 백제에 전래됐음을 보여주는 불교 미술품"이라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2/20190522000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