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한국][국회]급할 때만 同志, 평소엔 下人 (김형원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5. 10. 15:22



[기자의 시각] 급할 때만 同志, 평소엔 下人


조선일보
                             
             
입력 2019.05.10 03:04

김형원 정치부 기자
김형원 정치부 기자


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이 당직자에게 한 막말이 사흘째 회자되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 사무총장은 지난 7일 오전 국회 본관에 있는 한국당 사무총장실 정례회의에서 보고하러 들어온 당직자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쏟아낸 뒤 "꺼져!"라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1~2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국당은 현재 국회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하며
황교안 대표를 중심으로 전국을 돌며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한 사무총장은 장외투쟁 일정에 대한 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데 불쾌감을 느껴
당직자에게 폭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뜻하지 않게 욕설을 들은 당직자는 사직서를 내고 잠적한 상태다.

일부 언론에선 '한선교 막말사(史)'까지 내며 그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국회와 당이 직장인 당직자·보좌진들은 이번 일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거나 당할 수 있는
'직장 갑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회의 도중 직장 상사인 국회의원으로부터 심한 욕을 듣고도 아무런 저항을 못했다는 대목에서
동병상련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 당직자는 "직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느 쪽이 회사를 떠났겠느냐"며
"국회나 당에선 사직서를 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저항의 최대치"라고 했다.

최근 민간 회사에선 수평적 업무 문화를 강조하면서
서로 존칭을 붙이거나 영문 이름을 부르는 곳이 늘고 있다.

그러나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는
당직자·보좌진들이 여전히 의원을 '영감님'으로 떠받드는 상명하복 위계 문화가 뿌리 깊다.
국회 익명 게시판엔 하루가 멀다 하고
"의원 자녀들 명절 열차표까지 대리 구매했다" "
지역구에 반려견을 데려오라고 한다"는 고발성 글이 올라온다.
하지만 별다른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여야는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대치 전선을 형성했다.
전선의 최전방에는 양측 당직자와 보좌진들이 섰다.
일부는 이 과정에서 다치거나, 상대방으로부터 형사 고발을 당했다.
'동물국회'의 전위대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상당수 당직자와 보좌관은 "의원들과 동지애를 나눴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막말 파문 이후 한국당 사무처 노조는 "당의 동지적 신뢰 관계를 내팽개친 것"이라고 규탄했다. "급할 때는 동지(同志)라고 부르더니 상황이 끝나니 결국 다시 하인(下人)으로 깔아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당직자·보좌진국회와 정당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당직자·보좌관을 막 대하는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까.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을 바꾸겠다고 말하기 전에 자기 주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한 사무총장의 막말은 한번 지나가는 파문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회의 후진적인 '갑질 문화'와 '봉건적 주종(主從) 관계'를 깨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9/20190509039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