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내 직업병은 염탐 (박용진 PD, 조선일보)

colorprom 2019. 4. 10. 14:48

[일사일언] 내 직업병은 염탐


조선일보
                             
  • 박용진 투니버스 PD
    •          
    입력 2019.04.10 03:01

    박용진 투니버스 PD
    박용진 투니버스 PD


    얼마 전 영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하는 지인이 우스운 얘기를 했다. 현재 기획 중인 지하철역 폭파 장면 때문에 지하철만 타면 멋있게 폭파하는 상상만 한단다. 그러고 보니 누구나 직업병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남의 식당에 간 요리사는 자기도 모르게 음식에 들어간 재료를 맞히고, 성형외과 의사는 본의 아니게 앞사람의 견적을 낸다.

    PD인 나도 직업병이 있다.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보니 건너편에 앉은 동료부터 식당 옆자리에서 밥 먹는 사람들, 행인들 모습과 대화에 눈과 귀가 열린다. 염탐이 특기인 걸 보면 형사 일도 잘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린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뒤부터는 염탐이 좀 어려워졌다. 까마득히 어린 아이들 세상에서 소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 많이 보는 유튜브나 애니메이션을 찾아보고 댓글까지 읽어보지만 모두 간접적인 정보 확인이다. 그들의 세상에 직접 들어가봐야 그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소수의 문화인지 다수의 유행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아이들이 많이 모인 곳을 기웃거린다. 운동장에 가면 공을 차는 아이들이 외치는 이름이 '손흥민'인지 '메시'인지, 대형 마트 완구 코너에선 어떤 장난감이 유행이고 부모들 지갑의 평균 한도는 어느 정도인지, 스마트폰을 든 사내아이들이 소리치며 열광하는 게임은 무엇인지…. 최근엔 코인 노래방에서 옆방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워너원' 것인지 '위너' 것인지 듣다가 내 노래는 0점이 나오는 굴욕을 당한 적도 있다.

    [일사일언] 내 직업병은 염탐
    그러나 직업병 덕분에 다시 발견한 것이 있다. 바로 동심(童心).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요즘 세상에서 나는 아이들을 관찰하며 어린 시절을 투영한다.
    아이들과 시선을 맞추며 동심을 찾아가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노키즈존(no kids zone)이 생길 정도로 누군가는 아이들의 소란을 피하고 싶겠지만,
    마음속 타임머신을 잠시만 타보시라!
    우린 모두 아이였고 거침없이 사고 치며 자유로이 살았을 테니.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0/20190410001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