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영화] '아사코' (황지윤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4. 1. 18:43

[황지윤 기자의 혼자 보긴 아까워] 언제 닥쳐올지 몰라, 연애라는 재난


조선일보
                             
             
입력 2019.04.01 03:00

영화 '아사코'

황지윤 기자의 혼자 보긴 아까워
연애는 재난이다. 참사다. 그리고 불안이다.
'나'라는 존재에게 '타자'가 다가오는 것만 한 '사건'이 있을까.
지난달 14일 개봉한 '아사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첫사랑과 똑같이 생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아사코 이야기. 연인 료헤이와 결혼을 결심한 때 과거의 남자 바쿠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써놓고 보니 삼류 연애소설 같지만 인간관계와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영화다.
대사·장면·음악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다.
마치 연애란 본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듯 때로는 느슨하게, 물 흐르듯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스릴러처럼 관객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사코는 귀신 같다.
그녀의 크고 새까만 동공은 호러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줄 정도.
연애 상대는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공포스럽기도 한 존재니까.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청춘이 느끼는 불안의 정서를 연애와 사랑의 감정에 빗댄 점이 절묘하다.
평행을 달리던 재난 코드와 연애 이야기가 '지진'을 계기로 만난다.
여진으로 흔들리는 거리 한복판에서 마주친 아사코와 료헤이가 포옹하면서
둘의 연애, 그러니까 재난이 시작된다.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순간적인 끌림이나 호기심이었을까.
어쩌면 그저 불안하고 외로운 순간 다급하게 의지할 상대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서로 잘 알지 못하던 때, 둘은 우연히 전시관 앞에서 만난다.
서로 잘 알지 못하던 때, 둘은 우연히 전시관 앞에서 만난다.
"설마 내가 무서우냐"는 질문에 아사코는 아무 말 없이 료헤이의 얼굴을 만진다. /올댓시네마
영화는 5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아사코와 료헤이가 아침 먹는 장면을 비춘다.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 한 명은 토스트를 베어 물고, 다른 한 명은 라타투이를 카레로 착각하며 먹는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했다기보단 5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채워지지 않은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바쿠의 등장으로 둘 사이 한바탕 폭우가 쏟아지지만 아사코와 료헤이는 끝내 다시 만난다.
마지막 장면 에서 지칠 대로 지친 료헤이가 불어난 강물을 보며 탄식하듯 뱉어낸다. "더러워."
그러자 아사코가 대답한다. "그래도 아름다워."
끝없이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진창이 된 관계가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아사코의 말은,
재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재건(再建)의 의지이자 연애로 부침(浮沈)을 겪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다.

원제는 '자나 깨나(寢ても覚めても)'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1/20190401000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