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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영채, '풍경이 온다' (박해현 기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3. 11. 14:26


"진짜 풍경이란… 밖이 아닌 마음속 공간의 떨림"


조선일보
                             
             
입력 2019.03.11 03:00

'풍경이 온다' 펴낸 서영채 교수

서영채(58)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교수가
풍경의 인문학을 제시하는 연구서 '풍경이 온다'(나무나무출판사)를 냈다.
한국 문학의 근대성을 탐구한 국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 활동해온 서 교수가
풍경을 주제로 삼아 문학과 철학, 영화와 미술을 넘나들면서 지난 5년 동안 집필한 책이다.

풍경을 다룬 문학의 시선을 비롯해 17세기 이후 서양 풍경화에 담긴 근대성과 숭고미(崇高美)의 발견,
스피노자와 칸트, 헤겔 철학, 홍상수의 영화 '북촌 방향' 등에 나타난 풍경의 의미를 풀어냈다.

서 교수는 "청년 시절 보길도를 홀로 여행하다가 느닷없이 마주친 바다 풍경이 평생 나를 사로잡았다"며
풍경에 꽂힌 계기를 설명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엔 묘하게도 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 담긴 풍경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그런 환상을 포착하는 게 예술의 힘이기도 하다"라는 것.

그는 황동규 시인의 시 '걷다가 사라지고 싶은 곳' 중에서
'마음이 몸 빠져나와 두어 길 높이로 떠서/ 걸어오는 나를 보는 곳'을 인용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서영채 교수.
서울 북촌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 서영채 교수.
풍경의 인문학을 다룬 책 '풍경이 온다'에 영감을 준 곳이다. /장련성 객원기자
서 교수의 풍경론에서 핵심은 바깥에 놓여 있지 않다.
그는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놀라운 경치가 아니다"며
"한 장소에서 어떤 힘이 요동칠 때 터져 나오는 떨림"이라고 했다.

"풍경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마음속 장소가 그 자신과 격렬하게 부딪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풍경은 장면이 아니라 특정 상태의 공간에 대한 경험이다.
풍경의 효과는 그 안에 있는 사람 자신을 향한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의 표지는 19세기 독일 화가 가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변형해 꾸며졌다.
웅장한 자연경관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을 함께 그린 작품이다.

서 교수에 따르면 그림 속의 풍경은 거울이 되어 그것을 보는 관객의 시선을 되튕겨내고,
풍경이 관객을 바라보는 가운데 관객은 풍경의 시선으로 그림을 바라보게 됨으로써
그림의 안팎에 동시에 놓여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풍경의 인문학이 탄생한 셈이다.

서 교수의 책은 학술 연구서를 표방하지만 경쾌한 예술 산문처럼 읽힌다.

그는 "분과 학문이라는 제도적 틀 바깥에서 쓰고자 했다. 그래서 자유로웠다"면서

"그럼에도 논리와 진술의 정합성에서 아카데미즘의 규율을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털어 놓았다.

현란한 이론과 개념으로 무장한 서 교수에게 신파조의 질문을 던졌다.

봄날의 풍경이 다른 계절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그는 "봄이 와서 좋은데 그 끝에 묻어 있는, 봄이 오면 또 뭐하냐는 서늘한 느낌, 거기에 실려오는 약간의 청승, 그것이 청승임을 알면서 그로부터 빠져나가기 힘들어하는 사람의 마음, 그런 게 풍경의 비애이다"라고

청승맞게 답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1/20190311000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