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3.16 03:01
아무튼, 마이웨이
B급홍보 개척 공무원 조남식
"이거, 해킹당한 거 아니냐?"
2016년 7월 11일. 충북 충주시청이 뒤집혔다.
2016년 7월 11일. 충북 충주시청이 뒤집혔다.
시청 페이스북 커버 사진이 탄금호 풍경에서 검은 바탕에 노란색 궁서체로 "충성할 때 충! 충주시청",
빨간색 고딕체로는 "믿음, 소망, 사과. 사과는 충주사과" 등
기성세대가 보면 '아무 말 대잔치' 낙서장으로 바뀐 것.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사건은 8월 '충주호수축제' 게시물로 다시 불붙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사건은 8월 '충주호수축제' 게시물로 다시 불붙었다.
이번엔 시 정보통신과장 얼굴을 합성해 "와이파이는 사랑입니다"라는 느끼한 멘트를 넣은 것.
이 글이 화제가 되며 당시 존폐 논란이 있었던 축제는 방문자 수가 10만명이 넘으며 '대박'이 났다.
이후 고구마 축제의 "고:고구마, 구:구우면, 마:마시쩡" 삼행시 포스터,
이후 고구마 축제의 "고:고구마, 구:구우면, 마:마시쩡" 삼행시 포스터,
지역 옥수수를 홍보하는 "옥수수 털어도 돼요? 털지 말고, 잡수세요" 등의 게시물이 잇따라 화제가 됐다.
관련 글의 공유 수는 기본이 천 단위. 충주시청 페이스북 팔로어 수는 1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최근 지자체 홍보의 트렌드는 'B급 병맛'이다.
최근 지자체 홍보의 트렌드는 'B급 병맛'이다.
B급이란 저(低)예산, 병맛이란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는 감성이란 인터넷 용어.
충주시를 시작으로 시민의 날 홍보글을 "진진자라~(태진아) 형 광양 온다"로 만든 광양시,
한우축제 홍보글을"도르하누 축제를 하러 왔다"(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패러디)로 만들어
'약빤(약을 먹은 듯 제정신이 아닌) 드립력'이라는 격찬을 얻은 문경시 등
이제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홍보를 하는 지자체는 찾기 어렵다.
최근 충주시는 수소(소의 수컷) 발에 바퀴를 단 '수소차의 메카',
'미세 먼지 심각 인정? 모든 노인정 공기청정기 설치' 등의 글로 또 한 번 히트를 쳤다.
이런 지자체 B급 홍보의 선구자가 바로 조남식(32) 충주시청 주무관이다.
이런 지자체 B급 홍보의 선구자가 바로 조남식(32) 충주시청 주무관이다.
지금 나오는 글들은 소위 '조남식 키즈'의 작품들.
2012년 9급 공무원으로 입사한 그는 면사무소, 규제개혁팀 등을 거쳐
2016년 7월~2018년 7월 소셜미디어 홍보담당자로 근무했다.
현재 업무는 감사담당관실 조사팀.
그러나 지금도 문화체육관광부, 전북도청 등에 강연자로 초빙돼 온라인 홍보담당자 전문 교육을 진행 중이다. 올해 초에는 새로운 소셜미디어 홍보로 지자체 경비를 절감한 공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상도 받았다.
지난 12일 충주시청에서 만난 그는 외모로 봐서는 지극히 평범한 공무원 모습이었다.
지난 12일 충주시청에서 만난 그는 외모로 봐서는 지극히 평범한 공무원 모습이었다.
사진 촬영 중에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찍어주세요."
그런데 어떻게 '공공기관 홍보의 패러다임을 바꾼 재주꾼'이 된 걸까.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 인상이다.
"늘 평범했다.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도 없고 예능 프로그램도 안 보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
―그런데 어떻게 B급 홍보를 시작했나.
"소셜미디어 홍보담당관으로 발령난 후 시청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 인상이다.
"늘 평범했다.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도 없고 예능 프로그램도 안 보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
―그런데 어떻게 B급 홍보를 시작했나.
"소셜미디어 홍보담당관으로 발령난 후 시청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커버 사진이 산, 강, 탑이 있는 자연 풍경 사진이더라. 이름만 지우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보통 소셜미디어에서는 3초 안에 볼 건지, 안 볼 것인지 결정한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에게 '충주시'라는 브랜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가장 색 대비가 잘되는 검은색 바탕에 노란색 글자로 '충주시청'이라고 쓴 거다.
이걸 사람들이 'B급 병맛'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고."
―대충 그린 그림, 가득 채운 글자. 누가 봐도 B급이다.
"시청 컴퓨터에는 포토샵이 없어 파워포인트로 작업했다.
―대충 그린 그림, 가득 채운 글자. 누가 봐도 B급이다.
"시청 컴퓨터에는 포토샵이 없어 파워포인트로 작업했다.
초등학교 1~3학년 때 미술학원에 다닌 것을 빼면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명지대 국어국문과를 나왔는데 그때부터 패러디를 좋아해 텍스트는 패러디로 채운 거다.
그리고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나라면 보겠는가.'
언제부턴가 지자체들이 홍보에 공을 들이면서 게시물들이 상향 평준화됐다.
그렇다 보니 아무도 보지 않는 예쁘기만 한 작품이 됐다.
그래서 난 '반대로 가야겠다. 망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소셜미디어를 하는 사람들은 유머를 보고 싶어 하지, 진지한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으니깐."
―국문과를 나왔으면 문학이나 신춘문예에 도전한 적은 없나.
"없다. 교직을 염두에 두고 국문과를 선택했었다."
―윗사람들의 반응은.
"처음엔 큰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잘 모르니깐, 젊은 사람이 알아서 잘해라'는 식이었다.
"없다. 교직을 염두에 두고 국문과를 선택했었다."
―윗사람들의 반응은.
"처음엔 큰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잘 모르니깐, 젊은 사람이 알아서 잘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보고도 안 드리고 내 맘대로 했다.
소셜미디어는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고 가는 곳이라 결재받고 일하기가 어렵다.
행사 포스터를 만들 때는 담당 과장님들의 얼굴을 코믹하게 합성해 넣었는데, 기분 나빠하진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의 행사를 홍보해준다고 좋아하셨다.
나중에 화제가 되자 '내 얼굴은 언제 넣어 줄 거야?'라며 물어보는 분도 계셨다."
―홍보팀 발령 인사에 불만은 없었나.
"사실 아쉽기는 했다. 규제개혁팀에 있으면서 곤충 축사, 공장 캐노피(덮개) 규제 등을 해결해
―홍보팀 발령 인사에 불만은 없었나.
"사실 아쉽기는 했다. 규제개혁팀에 있으면서 곤충 축사, 공장 캐노피(덮개) 규제 등을 해결해
대통령상도 받고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는데. 그래서 살짝 '폭주'한 것도 있고(웃음).
그래도 밥값은 하자고 생각했다."
―게시물 아이디어는 어떻게 정하나.
"어떻게 하면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될까.
―게시물 아이디어는 어떻게 정하나.
"어떻게 하면 지역민들에게 도움이 될까.
옥수수 홍보 글도 내가 먹어보니 맛있어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든 거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 보면 농사짓는 분들은 맛있게 재배하려고 노력하는데,
인터넷을 안 하시다 보니 홍보가 안 된다.
당시 지자체 페이스북들은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아메리카노 쿠폰 등을 뿌리곤 했는데,
난 옥수수, 고구마 등 우리 지역 농산물을 경품으로 걸었다.
자신 있으니깐 맛보라고. 널리 나눠 먹으면서 사라고.
내 글들은 사실 인터넷 유행어가 거의 없다.
그래서 누구나 내 개그를 상식처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부에선 '이런 시도가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난 오히려 '복고풍 유머로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재능인가 보다.
"(재능이라기보다) 새로운 것에 대해 조직의 저항이 있을 걸 알면서 시도한 거다.
―당신의 재능인가 보다.
"(재능이라기보다) 새로운 것에 대해 조직의 저항이 있을 걸 알면서 시도한 거다.
사람들은 그 과정이 귀찮기 때문에 안 하는 거지. 누구나 하려고 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
"대학과 군대 빼곤 충주를 떠나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충주시청 공무원이셨고.
―시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
"대학과 군대 빼곤 충주를 떠나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충주시청 공무원이셨고.
'시는 내 것'이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홍보하려고 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들어온 질문은 새벽 3~4시라도 확인해 답변했다."
―'말단 공무원의 반란'이라고도 한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말단 공무원의 반란'이라고도 한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방법이 있다면 주변과 타협하지 않고 일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싶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가볍다 보니 나를 인터넷만 하는 방구석 폐인으로 생각하거나,
일에 대한 태도가 장난스럽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모두 계산의 결과물인데(웃음).
공무원이 된 후 1년에 책을 100~150권씩 읽었다.
홍보담당관이 된 후 읽은 홍보 관련 책만 50권이 넘는다."
―지금은 B급 병맛 홍보가 지자체 소셜미디어의 트렌드다.
"지자체들이 이 방법으로 해당 시민들과 재미있게 소통하게 됐다면 아주 기쁘다.
―지금은 B급 병맛 홍보가 지자체 소셜미디어의 트렌드다.
"지자체들이 이 방법으로 해당 시민들과 재미있게 소통하게 됐다면 아주 기쁘다.
전국엔 250여 개의 지자체가 있는데,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지 않나.
지금 충주시 소셜미디어 홍보담당관인 김선태 주무관은 고등학교 때 반 친구다.
최근 화제가 된 수소차, 미세 먼지 게시물은 이 친구가 만든 거다.
난 '패러디' 측면이 강했다면, 이 친구는 '말장난'에 더 가깝다.
지금 시대 트렌드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현재 강연은 얼마나 다니나.
"2017년 1월 20일 이후 70회 정도 간 것 같다."
―강연료는?
"공무원이지 않나. 법에 따라 20만~30만원 선이다."
―공무원 사회의 불만은.
"그런 말이 제일 싫다.
―현재 강연은 얼마나 다니나.
"2017년 1월 20일 이후 70회 정도 간 것 같다."
―강연료는?
"공무원이지 않나. 법에 따라 20만~30만원 선이다."
―공무원 사회의 불만은.
"그런 말이 제일 싫다.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 징계받는다' '너무 잘해도 안 되고, 못해도 안 되고, 중간만 해라'….
난 최대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싶은데 그런 모습이 타인에게는 안 좋게 비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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