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북한]'세계 여성의 날' (태영호, 조선일보)

colorprom 2019. 3. 17. 16:01

    

[아무튼, 주말]

여성의 날에 '혁명 자금' 깨는 평양 남자들… 여직원들 선물 사려고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          
    입력 2019.03.16 03:01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이었다.
    북한에선 '3·8 국제부녀절' 혹은 줄여서 '3·8절'이라고 한다.
    '여성'이라는 말 대신 '부녀(婦女)'라는 표현을 쓰는 건 중국공산당 표현을 따랐기 때문인 것 같다.
    공휴일은 아니다.

    이날 아침 평소처럼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자 TV에서 여성의 날 특집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3·8절' 기억이 났다.
    "오늘 평양 남자들 돈 많이 쓰겠구먼."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지니 아내가 말했다.
    "우리 직장에서 ○○○ 국장 손이 제일 컸지."

    여성의 날에 '혁명 자금' 깨는 평양 남자들… 여직원들 선물 사려고
    일러스트=안병현
    3·8절이 되면 여자들은 각종 기념보고대회 등 정치 행사가 많아 좀 피곤해 하면서도 은근히 이날을 기대한다.

    북한 남자들에게 3·8절여자 동료한테 잘 보여야 하는 날이다.
    평양의 중앙기관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여성 동료에게 고급 요리를 산다.
    국장이나 과장처럼 직급이 좀 있으면 여자 부하 직원에게 좋은 선물까지 준비해야 한다.
    식당에선 여자들이 좋아하는 특별 메뉴를 준비하고,
    상점에선 국제부녀절 축하용 화장품 선물세트까지 내놓는다. 값비싼 외제 화장품 세트도 있다.
    이날 아침 아내들은 "여자 동료한테 쓰느라 전 재산 날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3·8절 다음 날 여자 직원들 사이에선 상사가 어떤 선물을 줬는지, 어느 식당에서 밥을 샀는지가 화제다.
    돈깨나 있는 국장이 톡톡히 쏘지 않았으면 쩨쩨한 상사로 낙인찍힌다.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려고 직장 서랍에 둔 '혁명자금(아내 몰래 건사하는 돈)'을 쓰는 남자들도 있다.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요즘은 직장에서 상사가 밥 사준다고 해도 잘 안 간다.
    남자 상사가 여자 동료에게 화장품 사주면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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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 여성의 날인 '3.8 국제부녀절'용으로 나온 화장품 세트.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들을 위해 산다.
    북한의 3·8절을 떠올리면서 한국 TV에서 흘러나오는 여성의 날 특집 토론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낯설었다. 페미니즘, 젠더, 미투…. 나로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다뤄졌다.
    토론 패널로 나선 한 여성 전문가의 말에 뜨끔해졌다.
    "아직도 대다수 한국 남자들은 그저 바깥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들어와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어요.
    한국 남성들이 이제는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으며 TV를 보는 나더러 하는 얘기 같았다.
    아내는 옆에서 그날 대구로 강연 떠나는 나를 위해 양복과 와이셔츠를 다리고 있었다.
    여성을 위한 날인데 아내에게 집안일을 시킨 것이 무안해졌다.
    양복은 안 다려도 된다고 하니 아내는
    "아침마다 다림질하고 청소하면 기분이 맑아지니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아들 둘에게 말했다.
    "너희도 엄마처럼 시부모님 잘 모시고 남편 뒷바라지 잘하고 애도 잘 키우는 현모양처 만나라."
    그 얘기를 듣고 아이들이 답했다.
    "엄마, 한국엔 그런 여자가 없을뿐더러 그런 기준으로 여자친구를 사귀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내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너희는 집안일 나눠 하자고 당당히 말하는 여자를 만나라"고 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보, 우리는 애들 결혼하면 같이 못 살겠지?" 하면서 서운함을 숨기지 못했다.
    "아들이 결혼해서 집에 올 때마다 손자한테 10만원씩 주면 주말마다 오지 않을까" 했더니 그저 웃었다.

    북한에서 우리 부부는 맞벌이였다. 나는 외무성, 아내는 무역성에서 근무했다.
    집안일은 으레 아내 몫이었다.
    북한 남성들 대부분이 그렇듯 가사 분담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3·8절에 퇴근할 때 아내에게 꽃을 사다줬지만 그날도 집안일은 아내 몫이었으니까.

    한국에서도 맞벌이를 한다.
    아내도 일하고 저녁이면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인데 여전히 집안일은 아내 몫이다.
    아내는 영 어색해하지만 나부터라도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야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5/2019031501636.html



    김은숙(kimch****)2019.03.1713:55:37신고
    한국의 생활패턴이 가끔은 어색하실 수도 있지만 열심히 적응하시려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대한민국의 통일을 위해 선도자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한주(sporc****)2019.03.1710:00:58신고
    태영호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전동휘(qq****)2019.03.1710:00:52신고
    태영호는 우파의 기수다.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 적격 인물이다.
    김순옥(soonch****)2019.03.1709:43:30신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가장 먼 곳에 있는듯, 헤어진 친지들 소식도 들을 수 없고,
    왕래는 커녕 편지도 주고 받지 못하는 곳 - 북한.
    그보다 훨씬 자유로웠던 동독도 무너졌는데, 저렇게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정권이
    어떻게 오래 지탱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세계가 바뀌며 현대화되고 모두가 풍족히 자유롭게 살기를 추구하는데,
    언제까지 저렇게 삐뚤어진 모습으로 희극 속의 제왕처럼 군림하며 살겠으며...
    김정은이 살아 그 죄 값을 안받으면, 자식들이 부모대신 돌맞아 죽겠수다~~
    그 불쌍한 인민들, 자유롭게 생각하고, 배우고, 여행하며 살게 좀 풀어주지...
    1.4 후퇴 때 피난 내려오신 우리 부모는 이제 다 돌아가시고,
    이북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복 오빠와 언니가 있는데,
    혹 살아들 계시고 나 죽기 전 통일되면, 찾아 돕고 싶습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15/20190315016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