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이른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의사를 밝힌 사람이 11만명을 넘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도 3만6000여명에 달했다. 지난해 2월 일명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이후 많은 국민이 삶과 죽음에 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해 말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문화 조성을 위한 '웰다잉(well-dying) 시민운동'이 출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아직 미비한 점이 많다. 지난 1년 동안 임종 직전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모두 11만525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세 이상 성인 인구의 0.3%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성인의 45% 정도가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임종 환자 중 연명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의 68%가 가족 결정에 따랐고, 본인 의사를 확인한 경우는 32%에 불과했다. 환자의 의향보다 가족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사전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 290여곳에 불과하다. 정부가 지정한 사전의향서 등록 기관의 40% 정도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건강보험공단이 전국 지사망을 통해 등록 업무를 하고 있지만 이동이 어려운 노인들은 시·군 공단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이 제도가 정착하려면 각급 병원 응급실·입원실에서 환자 의사를 확인한 후 사전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나온 삶과 여생에 대해 생각해보는 웰다잉 교육이 필요하다. 연명의료에 대한 고찰은 물론, 자서전 쓰기, 유산 기부, 호스피스, 유언장 작성, 장례·
장묘 문화 등 아름답고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완화할 수 있다. 죽음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교육을 통해 실시해야 한다. 극심한 경쟁을 유발하는 사회일수록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아름답고 존엄하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입력 2019.02.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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