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2.22 14:17 | 수정 2019.02.22 17:40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칼 라거펠트. 두 명의 디자인 거장이 지난 2월 18일과 19일,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지구에서 빛나던 두 개의 별은 이제 우주의 별로 돌아갔다.
지구인이 슬픔에 잠긴 지금, 천국에선 두 명의 클래식한 악동을 동시에 맞이해 기쁨의 잔치가 한창일 테지.
천사들은 잠옷처럼 지루한 흰 원피스 위에 라거펠트가 만든 멋진 트위드재킷을 걸친 채,
그들의 나이만큼 잘 익은 와인을 꺼내올 것이다.
퐁퐁! 멘디니가 디자인한 안나G 와인 따개가 기지개를 켜는 소리는 또 얼마나 경쾌할 것인가.
그 유명한 프루스트 의자엔 신이 앉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겠지. "수고들 했네!"
먼저 자리 잡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구름을 딛고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잘 오셨소! 공교롭게도 내가 설계한 서울의 동대문 DDP에서 두 분 다 패션쇼와 전시를 열었더군요!
이 얼마나 귀한 인연인지요."
멘디니는 살아생전 그가 발굴했던 건축가 하디드의 환대에 예의 그 소년 같은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다.
선글라스를 낀 라거펠트와 곰방대를 문 샤넬 여사의 해후에 천국의 공기는 또 얼마나 시크해질 것인가.
자신의 DNA를 새긴 리틀 블랙 드레스와 트위드재킷을 놀라운 변칙으로 살려낸 그를,
그녀는 어떻게 치하할까.
품위의 지루함과 싸워 품위를 지켜낸 괴상한 후계자.
"나는 샤넬을 숭배한다. 하지만 나는 샤넬이 아니다"라는 독립 선언으로 유산을 지켜낸
이 담대한 상속자에게 건배!
두 천재 덕에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이 지구의 패션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은 놀랄 만큼 스펙터클해졌다.
라거펠트는 우리를 요란한 딴 세상으로 초대했다.
그곳에선 베르사유 궁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한 우아한 여성들이 낡은 진에 울 트위드 재킷을 입고
마트, 공항, 뒷골목을 들쑤시며 즐겁게 돌아다녔다.
멘디니는 우리를 편안한 딴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곳은 알레시의 와인 따개나 스와치의 컬러풀한 시계, 배스킨라빈스의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 블록 등
동화책에서 빠져나온 생기있는 소품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비슷한 듯 다른 삶을 살았다.
늦은 나이에 새 임무를 맡았고 죽기 직전까지 일했다.
멘디니는 아틀리에 멘디니를 58살에 창업했다.
그후 29년간 디자인, 건축, 가구, 등의 분야에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과 협업을 성공시켰다.
라거펠트는 50살이 되던 1983년에 샤넬 하우스의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그후 36년간 샤넬을 혁신적인 동시대의 하이패션으로 진화시켰다.
그들을 보면 오십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 얼마나 젊은 나이인가!
럭셔리와 유토피아로 추구하는 결은 달랐지만, 그들은 타고난 유미주의자였다.
아름다움을 위해 그들은 새것을 창조하기보다 옛것을 잘 비틀고 협력했다.
라거펠트가 지치지 않고 헤집었던 트위드 스타일은
가브리엘 샤넬이 71살에 만든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비닐과 가죽과 폴리에틸렌의 로큰롤적인 외출은 항상 울 트위드와 2.55백의 시그니처로 귀가해
어머니와 딸의 평화로운 연대를 끌어냈다.
멘디니의 창작 또한 원래 있던 것을 재조립할 때 빛을 발했다.
평범한 공산품 의자에 화가 폴 시냑의 현란한 색점을 찍어 완성한 프루스트 의자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한 손에는 최첨단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글이 새겨진 돌판을 들고 있는 모습이 가장 현대적"이라고
멘디니는 나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수많은 파트너와 협업했지만, 성격은 극과 극이었다.
‘칼 라거펠트 금기의 어록'의 편집자였던 빠뜨릭 모리에는
‘이 위대한 변칙주의자’는 후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썼다.
그는 오로지 현실에 충실한 찰나주의자였다. 그는 후손도 원치 않았다.
"만약 아이가 나 같지 않다면 아이를 사랑하기 힘들 거다.
그렇다고 그 녀석이 나보다 더 뛰어나다면 그 또한 사랑하기 힘들 것이다."
라거펠트는 죽기 전까지 고양이 슈페트를 자식처럼 키웠다.
반면 멘디니는 80살에도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조명등 아문 라물레또를 디자인해서
황금콤파스상을 수상했다.
세 개의 원으로 이어진 이 조명등은 각각 과거와 현재 미래로 뻗어있다.
그는 디자이너를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단조로운 천국을 변화시킬 인물로 전격 스카우트되어, 갑자기 이 세계에서 사라졌다.
자기를 사랑했기에 사랑받았던 초현대적인 가브리엘,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즐겁게 헌신했던 현대적인 다빈치로. 이승의 르네상스적인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다.
어떤 클라이언트와도 지혜롭게 협력했던 두 사람의 전력을 미루어보건대
,
천국에서도 신의 사랑을 받으며 장수할 것이다.
굿바이, 칼. 굿바이, 알렉산드로.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유능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면, 나는 성장이 멈출 테고
그러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유토피아에도 도달할 수 없다."-알렉산드로 멘디니.
"자기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삶을 살라.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럭셔리다."-칼 라거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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