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북부 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첫째 제러미 히스(65)와 막내 도미니크(53)는 일찌감치 집을 떠나 의학을 전공했다(major in medicine). 각각 잘나가는 의료계 경력을 쌓았다(forge high-flying medical careers). 부와 자산을 모아가며(amass wealth and properties) 전공 분야 최고 자리에 올랐다. 넉넉히 잘산다(live in plenty). 남 부러울 게 없다(have no need to envy others).
![칼럼 관련 일러스트](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902/13/2019021303316_0.jpg)
둘째 티모시(62)는 대학 졸업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pass the bar exam). 하지만 둥지를 떠나지(fly the nest) 못했다.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 없었다. 1965년 부모님이 마련한 집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곁을 지켰다(keep vigil beside the bed of his mother with dementia). 다른 두 형제가 출세하러 떠난(leave to make their way in the world) 사이 홀로 어머니를 돌봤다.
어머니는 무심코 유언을 남겼다(leave an inadvertent will). 재산을 세 형제가 똑같이 나눠 가지라고 했다. 그러자 첫째와 셋째가 어머니 임종을 지킨(stay by her deathbed) 둘째에게 집을 비우라고 했다. 소송까지 걸었다(file a lawsuit against him). "둘째가 병든 어머니를 간병한(care for their ailing mother) 것은 45세부터였으며, 그나마 치매에 걸리신 이후는 8년밖에 안 된다. 유산을 더 받으려고 과장하고 있는(over-egg the pudding) 것"이라고 주장한다.
형제들과의 쓰라린 다툼에 휘말린(be embroiled in a bitter row) 둘째는 말한다. "형과 동생이 의료계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는(achieve distinguished careers in the medical profession) 동안 혼자 어머님을 돌봐야 했다(look after her single-handedly). 사실상(in effect) 무보수 입주 간병인(unpaid live-in carer)이었다. 세 형제 몫을 다했다. 두 사람은 어떤 부담도 지지 않으려(take none of the burden) 했다. 아무런 경제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offer no financial support).
이미 부자인 형제들보다 조금 더 어머니 유산을 받겠다는(receive a bigger slice of her estate than my already wealthy siblings) 내 뜻은 돈 때문이 아니다. 억울해서다. 동생은 한 달에 한 번 와서 한 시간 있다가 갔다. 형은 1년에 두 번(twice a year) 왔다. 모두 떠넘겼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집을 팔아 나눠야 하니 나더러 나가라 한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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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tandard.co.uk/ s/uk/brothers-at-war-top-
☞ https://www.thesun.co.uk/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