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임시정부 100년 - 1부]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6] 주미대한제국 공사관 130년
나라 운명이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던 때였다.
건물 외벽에 영문 'Old Korean Legation'과 함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란 한글을
왼쪽 첫 방은 손님 맞는 접견실인 '객당(客堂)'.
샹들리에 조명과 의자·탁자 등은 고가구점에서 가장 비슷한 모양을 찾았다.
커튼·벽지·카펫 무늬도 가장 비슷하게 재현했다.
맞은편 태극기가 걸려 있는 쪽 방은 식사하거나 파티를 열었던 '식당(食堂)'.
붙박이 가구에 여러 차례 덧칠한 페인트를 조심스럽게 벗겨내자 130년 전 옛 색깔이 나왔다고 한다.
공사관이 문을 연 기간은 16년에 불과하다.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공사관에 걸린 태극기를 끌어내렸다.
강제 병합 사흘 후인 1910년 9월 1일 건물을 5달러에 강제 매입한 후 미국인에게 팔아버렸다.
태극기는 사라졌지만 공사관 건물은
미주 지역 한인들에게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미주 한인들은 공사관 꼭대기에 커다란 태극기를 그린 사진엽서를 만들어 한인과 미국인에게 나눠주면서
한국이 독립국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지금 공사관 3층 전시실에는 재현한 엽서를 비치해놓고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은 오랜 기간 잊힌 존재였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옛 역사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맞아 '공사관 매입' 여론이 일었지만 또 시간이 지나갔다.
공사관 건물은 그동안 미군 휴양소, 화물운수노조 사무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77년부터 티머시 젱킨스 부부가 사들여 거주했다.
우리 손에 다시 돌아온 때는 7년 전.
문화재청은 2012년 10월 18일 젱킨스 부부에게 350만 달러(약 39억5000만원)를 주고 건물을 사들였다.
이후 5년여간 보수·복원 공사를 거쳐 지난해 5월 22일 전시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주미 공사관 초대 서기관이었던 월남 이상재(1850~ 1927) 선생의 증손자 이상구씨가
재개관 행사에서 태극기를 게양했다. 113년 만에 다시 내건 태극기였다.
이날도 파란 워싱턴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