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1.31 03:00
'미움받을 용기' 쓴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
"3년 전부터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됐어요.
한국인은 그 어느 곳보다 격렬한 경쟁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자존감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강하고…. 그래서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요.
그런 한국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150만부가 팔려나간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63)가 최근
한국에서 150만부가 팔려나간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63)가 최근
'한국인을 위한 인생 상담소'라는 콘셉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철학자인 그가 지난 24일 전자책 플랫폼 리디셀렉트에 연재를 시작한 한국 독점 기획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는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 등 한국 영화 16편 속 주인공들이 철학자와 상담하며
고민을 해소하는 내용이다.
매주 한 회씩 20회 분량을 연재하고, 연재가 끝나면 책으로 엮을 계획이다.
서울에 온 그와 지난 29일 이야기를 나눴다.
"왜 영화를 매개로 했냐"고 묻자, 기시미는 동석한 통역사 이환미(39)씨를 가리켰다.
"제 한국어 선생님입니다. 이 선생이 영화를 전공한 분이라 한국어 배우는 틈틈이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한국인의 고민을 영화를 통해 풀어내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됐습니다."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작품을 골라 글감으로 삼았다.
한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작품을 골라 글감으로 삼았다.
'봄날은 간다'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 꼽은 작품.
기시미는 "주인공 은수(이영애)와 상우(유지태)의 관계가 서로를 지배하려 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한국적"
이라면서 "일본 남녀도 연애할 때 서로 우위에 서려고 하지만, 한국의 경우 더 극적인 것 같다"고 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철학자는
"사랑에 '왜'라는 건 없습니다. 사랑은 변하는 거예요"라고 조언한다.
"이 세상에 내 기대를 충족하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아는 게 바로 사랑이에요.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에게도 같은 걸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상우는 떠나려는 은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지요."
37년 전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게이코(60)씨가 옆에서 인터뷰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37년 전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 게이코(60)씨가 옆에서 인터뷰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당신 부부는 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물으니 기시미가 웃으며 "네"라고 대답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서로가 조금씩 노력하면서 성장했지요.
사랑하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똑같은 강물에는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했어요.
물은 흘러가 버리니 어제의 강과 오늘의 강이 다르다는 거죠.
사랑도 그래요. 지금 할 수 있는 건 오늘 내가 이 사람과 서로 사랑하며 지내는 것뿐이죠.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다음'이라는 찬스에 기대지 않고 지금 여기에 충실하다 보면 좋은 사랑을 하게 됩니다."
기시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
기시미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
"현재에 충실하라"는 아들러 철학이 기시미 저작의 핵심이다.
2006년 심근
경색으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고 이후 삶은 여생이라 생각하게 되면서
더욱 '현재'에 집중하게 됐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니 오늘 쓸 수 있는 건 쓰자고 생각하죠.
쉴 새 없이 쓰다 보니 지난해에 책을 다섯 권 냈습니다.
플라톤은 쓰면서 죽었다는데 저도 혹시 그렇게 될지 모르지요(웃음).
심각하지는 않게, 그러나 진지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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