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은 반동(反動)에 부딪혔다가 이를 넘어설 때 빨리 찾아오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카풀(car pool)과 철도가 만나 새로운 차원의 '모빌리티(mobility) 서비스'가 태어난 과정이 그렇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병(病)'을 상징하는 직장인 국영철도공사(SNCF)를 뜯어고치고 싶어 했다. 민간 기업보다 두둑한 복지 혜택을 누리며 정년도 보장받는 철도 노조원들의 '철밥통'을 깨뜨리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가 메스를 들이댈 때마다 파업으로 항전하는 노조의 벽을 뚫지 못했다.
철옹성 같던 SNCF 노조를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굴복시키고 승전고를 울렸다. 철도 개혁에 공감하는 국민이 많기도 했지만, IT와 카풀 등 신(新)산업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노조가 수십 년 묵은 공식대로 파업을 벌이자 SNCF 사측은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앱으로 대체 이동 수단을 실시간 전달해 파장을 줄였다. 특히 유럽 최대 카풀 서비스 회사인 '블라블라카' 이용 고객이 평소보다 2~3배 급증했다. 파업이 철도 고객의 발을 묶는 실력 행사가 무력해졌다. 세상의 변화 앞에서 노조는 백기(白旗)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내친김에 더 내달렸다. 카풀의 위력을 실감한 기욤 페피 SNCF 사장은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는 블라블라카"라고 했다. 그러더니 덥석 '라이벌'의 손을 잡았다. 지난해 가을 SNCF는 적자를 보는 자회사인 버스 업체 '위버스'를 블라블라카에 넘긴 뒤 1억유로를 투자해 블라블라카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다. 13년 된 스타트업과 82년 된 거대 공기업이 몸을 연결한 것이다.
의기투합한 두 회사는 "스마트폰에서 손가락 놀림 몇 번으로 카풀·버스·철도의 세 가지 이동 수단을 조합해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로 이동하는 서비스를 곧 내놓겠다"고 했다. 이들이 제시할 이동 수단의 조합은 3만 가지에 이른다. 쉽게 말해 코레일은 손님을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나르는 데 머물러 있지만, SNCF는 파리 근교 A아파트에서 마르세유 외곽의 B쇼핑몰까지 실어나르는 연계 서비스를 곧 실현한다는 얘기다.
프랑스 정부는 '탈 것' 서비스를 둘러싼 규제를 대부분 걷어냈다. 새로운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SNCF는 개인이 자가용을 렌터카로 내놓으면 이를
온라인으로 고객에게 연결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파리교통공사(RATP)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무인 버스를 지하철역끼리 연결하는 수단으로 시범 운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눈앞의 이익만 쳐다보느라 천지개벽을 외면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정부는 표(票)가 무서워서인지 뒷짐을 지고 방관한다. 세상의 변화를 뒤에서 쫓아가는 나라의 미래가 밝을 수는 없는 법이다.
입력 2019.01.30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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