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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32]가와지 도시요시, '私情' 버린 '일본 경찰의 아버지' (신상목 대표,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 25. 16:36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32] '私情' 버린 '일본 경찰의 아버지'


조선일보
                             
  •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          
    입력 2019.01.25 03:12

    가와지 도시요시(川路利良·1834~ 79)는 '일본 경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1864년 정국 주도권 탈환을 위해 조슈번이 교토를 습격한 '금문(禁門)의 난' 당시
    사쓰마번의 말단 무사였던 그는 적장 기지마 마타베(來島又兵衛)를 저격하는 공훈을 세운다.

    이때 가와지를 눈여겨본 인물이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였다.
    사이고에게 발탁된 가와지보신(戊辰)전쟁, 아이즈(會津)전쟁 등에서 잇달아 전공을 세우며
    번의 요직에 중용되었고, 메이지 유신 후에는 사이고의 후광으로 신정부 고위직에 진출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1871년 사법성(司法省) 시찰단의 일원으로 유럽을 방문가와지경찰이 근대 사법의 기초임을 깨닫고

    귀국 후 경찰제도 도입에 헌신한다.

    1874년 경시청 창설을 주도하고 초대 총수(大警視)에 취임함으로써 일본 경찰의 기초를 닦은 것이 그였다.

    그의 경찰 투신에는 아픔이 따랐다.

    1873년 사이고 다카모리정한론(征韓論)이 좌절되자

    불평사족(不平士族·舊무사계급)을 규합하여 정부와 대립하였고,

    결국 이듬해 세이난(西南)전쟁의 발발로 전장에서 생을 마감한다.

    가와지는 이때 경찰 총수이자 정부군 지휘관으로 사이고 토벌에 앞장섰다.

    사이고는 낮은 신분의 가와지에게 출세 길을 열어준 은인이다.

    연고(緣故), 인정(人情), 의리(義理)를 중시하는 전근대 관념으로는 가와지사이고를 좇는 것이 도리였다. 그러나 가와지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국익의 대의경찰의 사명에 비추어 사이고의 반(反)정부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 했고, 단장(斷腸)의 심정으로 사정(私情)을 버리고 반란군 진압에 나섰다.

    그 후의 역사는 가와지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하지만,

    사이고를 영웅시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가와지를 배신자로 인식하는 정서가 남아 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의인을 배신자 취급하고

    현실감 없는 지도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공사(公私) 구분의 흐릿함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4/2019012403210.html


    유세형(jasir****)모바일에서 작성2019.01.2513:24:05신고
    아주 날카롭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입니다 저도 가와지를 소설에서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저도 읽고 싶습니다. 소설 제목 알려줄수 없나요
    박희남(heepa****)2019.01.2509:58:21신고
    부모자식도 고발하는 공산당 10호담당제와 주사파사회주의같은 무서운 집단들 때문에
    나라와 경제를 망친다.......지금의 현 시국과 비슷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4/20190124032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