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1.17 03:00
박완서 작가 8주기… 작가 29명이 선생을 기리는 콩트집 펴내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8주기를 맞아 한국을 대표하는 29명의 작가가 모였다.
짧은 소설인 콩트를 틈틈이 즐겨 썼던 박완서를 기리는 콩트 모음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작가정신)이
17일 출간된다.
김숨·김종광·이기호·정세랑·조경란·조남주·최수철 등 중견부터 박완서 선생이 작고하고 등단한 신진까지 세대를 넘어 선생에 대한 애정을 고백한다.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주변 이웃의 삶을 탐구한 박완서의 문학 정신을 기리며 쓴 콩트들이다.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주변 이웃의 삶을 탐구한 박완서의 문학 정신을 기리며 쓴 콩트들이다.
아들이 갖고 싶어 하는 비싼 레고를 샀다가 아내한테 혼이 나고 아들과 함께 환불하러 가는 아버지
(이기호 '다시 봄'), 회사에서 쫓겨나 아내에게 얹혀사는 형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로 불리는 남자
(최수철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처럼 해피엔딩을 빌어주고 싶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직접적으로 박완서와의 일화를 언급하며 선생을 그리워하는 글도 담겼다.
직접적으로 박완서와의 일화를 언급하며 선생을 그리워하는 글도 담겼다.
'옥상에서 만나요'를 쓴 정세랑은 인사도 건네지 못하고 박완서의 뒷모습만 바라봤던 기억을 떠올린다.
"(머리카락) 한 올만 뽑으면 안 될까 하고 록스타에게 손을 뻗는 팬처럼 침을 꿀꺽했지만
물론 그런 망나니짓은 하지 않았다. (…) 인사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하다가 따라 걷는 자에겐
뒷모습이 상징적일 수도 있겠다고 여기게 된 건 요즘의 일이었다."
박완서는 등단 후 신인 시절,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지지만 삶은 점점 각박해지는
박완서는 등단 후 신인 시절,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지지만 삶은 점점 각박해지는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풍경을 콩트로 많이 남겼다.
생전에 콩트 쓰는 맛을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에 빗대면서
"바늘구멍으로 내다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적어도 이삼십 년은 앞을 내다보았다고 으스대고 싶은 치기"가 있다고 쓰기도 했다.
그의 첫 번째 짧은 소설집인 '나의 아름다운 이웃' 개정판도 이번에 함께 출간됐다.
콩트집에 참여한 작가들은 박완서의 글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이
콩트집에 참여한 작가들은 박완서의 글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도 박완서 산문집·인터뷰집이 잇따라 출간됐고 서울 성북구에선 그를 기리는 전시가 열렸다.
정세랑 작가는
"가정이나 사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의 기준에서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기호는 "당시엔 이념을 앞세운 문학이 많았는데
거창한 이념이나 주의보다는 자신의 내면이나 우리 주위 이웃들을 먼저 살피셨던 분"이라면서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문학의 다른 차원을 보여주셨다"고 했다.
딸, 어머니, 아내로서 겪어낸 여성의 삶에 대한 고민도 요즘 시대의 화두와 맞닿아 있다.
딸, 어머니, 아내로서 겪어낸 여성의 삶에 대한 고민도 요즘 시대의 화두와 맞닿아 있다.
콩트집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글이 눈에 띈다.
조경란은 여상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해 큰돈을 벌고 10여 년 만에 가족 앞에 나타난 '수부 이모',
윤이형은 임신과 육아로 8년을 보내다 자살극까지 벌이며 복직하는 '여성의 신비'를 그렸다.
후배 문인들의 눈에 비친 박완서 선생의 생전 모습도 볼 수 있다.
후배 문인들의 눈에 비친 박완서 선생의 생전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숨은 "눈 속에서 노란 보름달처럼 떠오르는 복수초를 알려주신 보름달보다 환히 웃으시던 박완서 선생님"
이라고 헌사를 썼다. 그는 "꾸미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울림이 있는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게 됐다"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긍정성을 잃지 않은 축복받은 작가이셨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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