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공부

[1175] 정치는 虛業 (조용헌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 14. 14:43

[조용헌 살롱] [1175] 정치는 虛業


조선일보
                             
             
입력 2018.12.31 03:14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에서 30년 이상을 전념하다 보면 한마디를 하게 된다.
그 업종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있는 워딩이 그것이다.

50년 넘게 정치를 한 삼김(三金)도 한마디씩 남겼다.
정치에 대해서 YS'세(勢)'라고 하였다. '세'만 유지하고 있으면 된다는 의미였다.
DJ는 '생물'이라고 규정하였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JP도 남겼다. '허업(虛業)'이다.

노장(老莊)을 좋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가운데서 '허업'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는다.

정치인은 거의 매일 밥 자리, 술자리가 이어져 있다.
여기에서 만나는 인간관계가 무슨 깊이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점(點)만 찍으러 다니는 인간관계다.
온통 이해타산이다. 이득이 있으면 만나고 이득이 없으면 그 순간 끝내기다.
500년 전의 퇴계 선생은 이를 '이진성로인(利盡成路人)'이라고 표현하였다.
'이익이 다하면 길가에서 스쳐가는 사람처럼 된다'는 의미 아닌가.
500년 전에도 그랬는데 지금에 안 그런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정치는 표를 동냥하러 다니는 구걸직(職)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권력의 황금 의자에 앉아 있는 직종이다.
갭이 너무 크다. 갭이 클수록 자리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온도 차가 크다.
갭과 온도 차가 클수록 허무감도 비례하지 않겠는가.

허업(虛業)은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노자·장자에서 말하는 수준 높은 허(虛)를 가리킨다.
금배지를 달거나 정권 실세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이걸 실업(實業)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기 앞에 큰 감 놓거나 , 자기 실속 차리는 자리로 생각하는 게 실업 개념이다.
갑질이나 하는 자리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이다.
자기를 비우고 공심(公心)으로 임해야 되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허업이다.

하기야 휴대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무슨 자리에 있다고 해서 돈을 먹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요즘 기관장들이 받는 혜택은 의전(儀典)이 대부분이다.
나는 오늘도 TV에서 허업을 시청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30/20181230018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