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기재부-서울시 갈등에 금 가고 물 새는 '딜쿠샤' (뉴스큐레이션팀, 조선일보)

colorprom 2019. 1. 11. 16:02

기재부-서울시 갈등에 금 가고 물 새는 '딜쿠샤'

최근 서울시가 일본 강점기 때 3·1운동을 외신으로 처음 보도한 미국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살던 집 '딜쿠샤(Dilkusha)'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딜쿠샤 소유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기재부-서울시 갈등에 금 가고 물 새는 '딜쿠샤'

    • 뉴스큐레이션팀
               
    입력 2015.09.02 08:22 | 수정 2015.09.02 08:58

    기재부 "10억원 줘야 양도"
    서울시 "무상으로 받아 문화재 지정 추진"

    서울 종로구 행촌동 사직터널 위 언덕에 있는 딜쿠샤

    구한말 한국에 온 UPI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 지은 2층짜리 서양식 집이다.


    테일러19193·1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처음으로 알렸다.

    테일러한국의 독립을 소망하며 힌디어로 '이상향'이란 뜻의 딜쿠샤라고 집 이름을 지었다.

    조선독립 열망을 세계에 알린 '딜쿠샤' 주인들
    종로구 딜쿠샤/ /이은지 인턴기자

    그는 반일 활동을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렀고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됐다.

    이런 역사성과 건축사적 가치 때문에 딜쿠샤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이 몇 차례 추진됐지만,

    소유권 문제와 일부 주민의 무단 점유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


    3·1운동 알린 외신기자의 집
    광복후 정부 소유됐지만 방치


    현재 방이 10여개 딸린 딜쿠샤에는 15가구 19명이 들어와 살고 있다.

    광복 후 딜쿠샤 소유권이 국가로 넘어왔으나 정부가 방치하면서 그 자리에 하나 둘 들어와 살 게 된 게

    수십년째다.


    건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딜쿠샤 건물 곳곳에는 금이 가고 물이 새는 상태다.

    최근 정부를 대신해 딜쿠샤를 관리하는 자산관리공사가 민간업체에 의뢰한 안전 진단에서 D등급을 받아

    지붕을 덧씌우고 지하에 지지대를 설치하는 등의 임시 보강 공사를 했다.

    "복원비만 20억원 든다" - 서울市           


    딜쿠샤의 안전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서울시는 지난달 11일 딜쿠샤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6개월 안에 기재부로부터 딜쿠샤를 무상 양도받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기재부가 딜쿠샤 소유권을 서울시에 무상으로 넘겨주면

    딜쿠샤를 무단 점유한 주민 19명의 이주 비용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딜쿠샤를 문화재로 지정하려면 건물 복원과 무단 점유 입주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딜쿠샤의 복원 비용 견적만 20억원이 넘는데

    기재부가 딜쿠샤 소유권을 넘기는 대가로 10억원 이상을 요구해 협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차라리 공개 매각" - 기재부           


    기재부는 "무상 양도는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신 딜쿠샤에 대한 감정 평가를 받아 공개 매각하거나

    서울시의 다른 자산과 교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국유재산정책과 관계자는

    "국유 재산인 딜쿠샤를 서울시에 무상으로 넘길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비슷한 가치를 지닌 서울시 재산과 딜쿠샤를 맞교환하자고 서울시에 제안했으나

    서울시가 무상 양도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또 무단 점유자에게 부과해온 변상금을 처리하는 문제와

    다른 지자체에서 국유 재산에 대한 무상 양도를 요구해올 경우 발생할 형평성 시비 때문에

    서울시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정원 기자, 이은지 인턴기자(연세대 신문방송학 졸업)

    테일러 일가의 4대 걸친 '한국사랑'


    청계천에서 아낙들이 빨래하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서울이 이렇게 변했네요.


    4대에 걸쳐 ‘한국 사랑’ ‘서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87·Bruce T.Taylor)씨.

    그가 부인과 딸을 데리고 다시 서울 땅을 밟았다.

    1940년 마지막으로 서울을 찾은 지 66년 만이었다.

     

    테일러씨는 종로구 행촌동 1-88·89번지 생가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혀 있는 마포구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둘러봤다.

    그의 생가는 수십년간 여러 가구의 주민들이 유서 깊은 건물이었는지도 모르고 살림집으로 나눠 쓰고 있었으나, 지난해 테일러씨의 의뢰를 받은 영화기획자 김익상씨가 어렵사리 찾아냈다.

    이 건물 하단부에 아직도 남아 있는 ‘Dilkusha’(딜쿠샤)라는 석판 덕이었다.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가운데)씨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힌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찾아 아내(왼쪽)·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조선DB





    딜쿠샤는 우리 집 이름이었어요. 힌두어로 행복한 마음이란 뜻으로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는데…”

    65년 만에 다시 찾은 생가 앞에서 테일러씨의 눈가는 끝내 촉촉하게 젖었다.


    테일러씨 가문은 한국과 100년 가까이 인연을 맺어왔다.

    그의 할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George Alexander Taylor)씨는

    일찍이 평북 운산의 금광에서 기사로 일하다 1908년 사망, 마포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아버지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씨에 대해 테일러씨는

    3·1운동 당시 UPI통신 특파원으로서 일본 경찰의 수색을 피해 독립선언서 일부를 침대 밑에 숨겨

    전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앨버트 테일러씨는 1942년 아내와 함께 일제에 의해 추방돼 1948년 미국에서 생을 마쳤으나

    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겨 양화진에 안장됐다.


    어머니 매리 테일러(작고·Mary Taylor)씨는

    테일러 일가의 서울생활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남겼고,

    영화제작자인 딸 제니퍼 테일러(48·Jennifer Taylor)씨는

    할머니의 자서전을 토대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이번에 방한한 브루스 테일러씨는 3·1운동이라는 대사건을 ‘며칠 남겨 놓은’ 1919년 2월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캘리포니아에서 1982년까지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했다.


    서울시브루스 테일러씨에게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증을 수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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