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尹愭·1741~1826)가 자신을 경계하여 쓴 '자경(自警)'이다.
"아아, 이 내 몸을 묵묵히 돌아보니, 성품 본시 못난 데다 습성마저 게으르다.
속은 텅 비었는데, 어느새 늙었구나
(于嗟儂, 默反躬. 性本憃, 習以慵. 中空空, 奄成翁).
입은 아직 뚫려 있고 혀도 따라 움직여서, 아침저녁 밥을 먹고 쉼 없이 말을 한다.
가슴 속을 펴 보여 되는 대로 내뱉는다
(口尙通, 舌則從. 飧而饔, 語不窮. 發自胷, 出多衝).
공부를 버려두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나중엔 두려워서 용납될 곳 없으리니,
어이해 틀어막아 그 끝을 잘 마칠까
(縱着工, 罔愼戎. 後乃?, 若無容. 曷以壅, 曁厥終)?"
또 '자식들을 타이르고 또 스스로 반성하다(警兒輩 又以自省)'에서는 이렇게 썼다.
"저기 저 새를 보라. 기미 보아 날고 앉네. 하물며 사람인데, 화 자초함 생각 않나
(相彼鳥矣, 色擧翔集. 矧伊人矣, 不思自及).
탐욕을 부릴 때면 왜 두려워하지 않고, 이익을 붙좇을 젠 어이해 못 깨닫나
(方其貪也, 胡不懼兮. 方其趍也, 胡不悟兮)?
득의로운 그때에는 저 잘났다 뻐기지만, 엎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네
(得意之時, 謂巧過人. 覆敗之後, 悔無及焉).
입은 화를 부르고, 행동은 흠 만드니, 생각하고 잘 간수해, 경계하고 삼갈진저
(惟口招禍, 惟動啓釁. 念茲在茲, 必戒必愼)."
같은 글에서 또 말한다.
"사람이 누군들 말조심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며, 입을 봉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 마음을 능히 간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실로 능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마음으로 잊지 않고, 말을 할 때는 세 번 따져본다.
말을 하려다가도 도로 거둔다면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고, 말을 하지 말아야 할 때는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때에 맞춰 누그러뜨린 뒤에 말하면 허물도 없고 후회도 없을 터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 겠는가
(人亦孰不知言之當愼, 孰不欲口之必緘. 而卒不能然者何也? 以此心之不能存故也. 苟能念念不忘, 臨言而三思, 欲發而還收, 則可以當言而言, 不當言而不言, 馴致於時然後言, 无咎无悔矣, 豈不美哉)?"
한마디 더.
"사람에게 말은 물이나 불과 같다.
사람은 물과 불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홍수나 화재가 나면 너무도 참혹해도, 그 해로움을 삼가면 아무 폐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