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 동북아 전문가 인터뷰] [下]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
옌쉐퉁(閻學通·67)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은
"북한 비핵화는 미국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북 비핵화 문제는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의 무역전쟁이 없더라도 미·중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중국의 굴기는 미국을 포함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국익과 세력 관계에 바탕한 현실주의적 분석으로 유명한 옌 원장은 중국 국제정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교 브레인 중 한 명인 그는 지난 연말 칭화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직설 화법으로 2019년 국제 정세를 진단했다.
―2019년 국제 정세 중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사건은 무엇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을 가질 것이냐 여부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상당히 낮다고 본다.
트럼프는 말로는 '김정은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지만
더 얻을 게 없다는 결론이면 김정은과 만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더 이상 핵실험도,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도 하지 않는다는 건
트럼프에게도, 미 정부에도 이미 큰 성과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새로운 성과를 추구할 의지가 없다."
―비핵화 협상이 더 이상 진전이 없을 것이란 뜻인가.
"기본적으로 현상유지로 갈 것이다. 2019년을 넘어 장기간 그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핵 가진 북한을 상대로 미국은 절대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북한도 '내가 도발하지 않으면 미국도 난리 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을 갖게 됐다.
김정은은 미국이 뭘 하는지만 볼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서 양보할 가능성은 없나.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어떤 새로운 정책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이미 끝났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결국 북한의 핵 보유라는 새 현실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만약 미국이 북핵을 제거할 능력이 있었다면 진작에 그랬을 것이다.
북핵은 다시는 국제사회의 핫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서두르지 않는 게 대북 제재 효과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금까지 대북 제재는 북한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을 뿐이다.
더구나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 북한에 미국이 새 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 가진 북한에 익숙해진 국제사회에선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나라들이 나올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북한이 비핵화를 않더라도 북한과 부단히 관계 개선을 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의 압력이 있는데 한국 정부가 뭘 할 수 있나.
"나토와의 동맹 관계조차 개의치 않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신경 쓰겠는가.
한국 정부는 빠르면 1년 안에
미국의 노여움을 사더라도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은 타협점을 찾을까.
"미국이 원하는 타협안을 도출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역 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의 무역 전쟁이 없었더라도 중·미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중·미 간 실력 차가 줄어들수록 경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단 두 대국 간 갈등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제조 2025' 문제에서 중국이 양보할 수 있을까.
"이 문제야말로 현재의 중·미 무역 전쟁이 과거 미·소 경쟁과 본질적으로 다른 기술 전쟁이라는 걸 보여준다. 국제사회로선 신냉전으로 귀결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 경쟁보다는 그쪽이 낫다.
지식경제 시대에 중국에 추월 안 당하려면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이 미국을 넘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인식이다.
중국 역시 미국이 반대해도 화웨이의 5G 기술을 세계에 밀어붙일 것이다."
―미국이 눌러도 중국이 굴기를 계속할 힘이 있다는 것인가.
"중국이 굴기할 수 없도록 한다? 그건 미국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굴기를 멈추고 말고는 오직 중국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전 세계가 힘을 합쳐도 중국의 굴기를 막을 수는 없다."
―미·중 갈등 시대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중·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각국 정치가들에게 과거보다 훨씬 강인한 외교 능력이 필요하다.
또 이 문제에선 미국 편을, 저 문제에선 중국 편을 드는 식으로
전략적 이슈마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옌쉐퉁 원장은
헤이룽장대에서 영어학과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뒤 미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 국제정치 이론과 중국 제자백가에 정통하며, ‘군사력 강화 없는 화평굴기는 불가능하다’는
패도(覇道)론을 주창한다.
세계 최대 학술출판 그룹인 엘스비어가 뽑은 2014~2017년 ‘최다 인용 중국 학자’에
정치학자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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