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트루디 여사는 눈을 떴다. 갑판으로 나왔을 때 현실은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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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트루디 여사는 눈을 떴다. 갑판으로 나왔을 때 현실은 그의 기대를 배신했다.
김장환 목사는 한국전쟁 때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보이로 일했다. 온갖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했다.- 남달리 영리하고 부지런한 그를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칼 파워스 상사가 눈여겨보았다.
- 탄광촌 출신인 파워스 상사는 학비가 없어 대학 진학을 접고 군에 입대한 처지였다.
- 결국 ‘하우스보이 김장환’은 파워스 상사가 마련해 준 408달러짜리 배표를 들고
- 1951년 11월12일 미국행 배를 탔다. 미국에서 부산으로 보급품을 싣고 왔다가 돌아가는 배였다.
- 이후에도 파워스 상사는 8년간 학비를 대며
- ‘하우스 보이 김장환’을 명문사립 밥 존스 고교와 대학, 대학원까지 보냈다.
- 트루디는 밥 존스 고교에 다닐 때 '코리언 김장환'을 처음 만났다.
트루디 여사가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지 올해로 꼬박 60년이다. - 10일 서울 남대문에서 트루디 김(80) 여사를 만났다.
- 그는 목회자의 아내이기 전에 먼저 ‘선교사 트루디’의 삶을 살았다.
- 질의 :전쟁 직후의 가난한 한국, 두렵지 않았나.
- “그때 뱃삯이 없어서 화물선을 타고 왔다. 태평양 파도 위에서 남편에게 ‘가ㆍ나ㆍ다ㆍ라’를 배웠다.
- 시어머니를 만나면 한국어로 인사말을 하고 싶었다.
- 나는 유달리 모험심이 강하다. 한국은 두려움의 나라가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
부산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갔다. - 시댁은 수원이었다. 초가집이었다. 시어머니가 처음 국수를 건넸을 때 그는 포크를 찾았다.
- 스파게티라고 여겼다. 국수 육수 위에 둥둥 떠다니는 멸치를 보고는 기겁했다.
- “살아있는 생선처럼 보였다.”
- 그렇게 1년간 시집살이를 했다.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 미국에서 16세 때 운전면허를 땄던 그에게 한국의 가난은 솔직히 충격이었다.
- 질의 :지금껏 남편에게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다고 들었다.
한국 사람의 정(情)에 끌렸다. 그들은 따뜻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스물두 살 때 수원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아주 어린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학생들은 나를 ‘뺑코’라고 놀렸다. 그렇게 2년을 다녔다.”
트루디의 좌우명은 ‘심겨진 곳에서 꽃을 피우라’다.
- 질의 :교도소에서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얻었나.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영어를 가르치든, 아이들을 가르치든, 파이를 굽든, 화장실 청소를 하든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럼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연다. 덩달아 인복(人福)도 생긴다.”
실제 그랬다. 김장환 목사가 1966년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침실 청소는 1주일에 한두 번 하더라도, 화장실과 주방은 매일 청소했다.
트루디 여사는 1978년 교회 부설로 중앙기독유치원을 세웠다. 그곳에서 장애아동 통합교육을 실시했다.
트루디 여사는 유치원 원장을 맡아오다가 지난해 은퇴했다.
- 질의 :쉽지 않은 일이다. 가슴에 새기고 사는 성경 구절이 있나.
“갈라디아서 2장20절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 힘으로 사는 것이라면 얼마나 힘들겠나.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식기 세척기’가 생기는 거다.”
- 질의 :왜 식기 세척기인가.
“접시를 내가 하나하나 닦으면 굉장히 힘들다. 식기 세척기에 맡기면 훨씬 더 수월하다.
접시도 더 깨끗이 닦인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게 마음을 씻어주는 ‘식기 세척기’다.”
- 질의 :내 손으로 닦는 것과 식기 세척기로 닦는 것. 둘은 무엇이 다른가.
“그건 확연히 다르다.
식기 세척기에서는 우리가 손을 댈 수 없는 뜨거운 온도의 물이 나온다. 그래서 속까지 씻긴다.”
- 질의 :언제 갈라디아서 2장20절을 가슴에 처음 담았나.
- “미국 미시간주에서 살던 중2 때였다. 집회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와서 설교를 했다.
-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다.
- 그때 제 가슴을 때린 구절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산다’였다.”
남편 김장환 목사는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 질의 :2006년에는 골수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어떻게 극복했나.
“가을이었다. 강연 초청을 받고 미국에 갔었다.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허리가 아팠다. 그래도 그냥 참았다. 의사는 내게 ‘다발성 골수종 3기’라고 했다.
그때 저는 주님과 대화했다. ‘주님…, 암이라네요.’
의사는 ‘왜 그리 미련하게 참았느냐’고 나무랐다.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척추의 일부를 절단했다.”
- 질의 :힘들지 않았나.
“처음에는 걷지도 못했다.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계단 오르는 법, 자동차 타는 법부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제가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이다.
그때 기도를 했다. 한 번은 내 안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 너에게 고통이 없었다면 나와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었겠느냐.
이토록 작은 일에 감사할 마음이 들었겠느냐. 네가 지금보다 온유할 수 있었겠느냐.’
수술과 회복 과정은 제가 주님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귀한 시간이었다.”
트루디 여사는 요즘도 이렇게 기도한다. “심겨진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김장환 목사 부인 트루디 "예수는 내게 식기세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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