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혐한류는 中 한한령과 달라 여러 목소리 중 하나에 불과해
BTS 공연엔 全席 매진으로 환영… 그런 일본과 함께 미래 열어야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한 멤버가 입은 버섯구름 티셔츠 사진을 보며
여러 사람이 통쾌함을 느꼈나 보다.
관련 뉴스의 댓글을 보니
"일본은 한 방 더 맞아야 한다" "침략자에게 그 정도도 못하느냐" "애국한 건데 뭐가 문제냐"고 한다.
그런 댓글을 쓰는 이들은 원자폭탄엔 눈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원자탄은 조준이 필요 없는 무기다.
1945년 8월 6일 오전 B-29가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탄은
8000여m를 하강하다가 지상 550m 상공에서 터졌다.
그 폭탄 한 방에 히로시마 주민 16만명이 몰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7만명이 더 죽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극심한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전쟁과 무관한 이들까지 무차별하게 죽여도 되는 것은 아니다.
히로시마에서 죽은 이 중엔 고종의 손자 이우(李鍝·1912~1945)도 있었다.
조선 왕족 가운데 유일한 희생자다.
그는 강요에 의해 일본 장교가 됐지만 히로시마에서 근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전역을 요구하다 끌려가
한 달도 안 돼 피폭당했다.
얼굴과 가슴에 화상을 입은 상태로 발견돼 밤새도록 신음하다가 다음 날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서울로 운구돼 자신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 조국의 광복을 맞았다.
이런 기막힌 사연을 갖고 죽은 이가 한둘이었겠는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이 약 4만명이다.
2400명은 피폭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 있다.
BTS 멤버인 그 청년은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고 그 옷을 입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한·일 양국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와
온갖 혐오의 말을 쏟아내고 증오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등장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나온 뒤여서 더 극렬했다.
혐한(嫌韓)이란 표현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대(大)혐한', '초(超)혐한'이라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한국과 단교하라!"고 외쳤다.
상처에 약을 바르지 않고 손톱으로 긁어 기어이 덧내고야 말겠다는 이들이다.
일본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기다렸다는 듯 발끈하는 대응이 잇따랐다.
BTS 멤버가 입었던 티셔츠를 보란 듯 완판시키며 일본을 자극했다.
애국심이 맹목적인 민족주의의 옷을 입으면 핏줄 갖고 목숨을 차별한다.
지난 11일 파리 개선문 앞에서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전날 독일이 항복한 종전기념관을 찾아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끌어안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민족주의와 애국을 혼동하지 말자고 했다.
그는 잘못된 민족주의를 과거의 악령으로 규정하고,
그 악령이 원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공포'라고 말했다.
과거사에 포박당한 한·일 양국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민주국가다.
사드 배치 후 시작된 중국 한한령(限韓令)엔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반면 혐한류(嫌韓流)는 일본이 내는 여러 목소리 중 하나일 뿐이다.
그 목소리에 벌컥 하면 양국 관계 악화를 바라는 이들이 친 덫에 걸리게 된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다.
원래는 공원 밖에 있었다.
그 위령비를 공원 안에 들여놓지 못하게 막은 이도 일본인이고,
그들과 맞서 싸워 위령비를 공원 안에 들여놓고 함께 추모한 이들도 일본인이다.
BTS가 어제부터 도쿄돔을 시작으로 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를 돌며 공연을 펼친다.
전석 매진이라고 한다.
양국의 불화를 노리고 1년 전 동영상을 찾아내 훼방 놓는 이도 일본인이지만,
BTS를 전석 매진으로 환대한 이들 또한 일본인이다.
두 일본 중 어떤 일본과 손잡아야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의 문을 열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