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일류 직업의 기준은 두 가지다. 구하기 어려운 소비재에 접근할 특권을 갖고 있거나(have privileged access to hard-to-get consumer goods) 임금을 외화로 받느냐(be paid in foreign currency) 여부다.
또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역별로 다른 가격 차이를 이용해(take advantage of price differentials) 물건을 사고팔아 이문 남는 장사로 득을 보기도 한다(benefit from profitable sales of merchandise). 요즘엔 장마당이 늘어나 엄청 바쁘다(be as busy as a bee).
시베리아 강추위, 중동 사막 열기 속 극심한 조건에서 고생하는(toil in extremely difficult conditions) 근로자들은 강제 노동이나 현대판 노예 피해자(victims of forced labor or modern-day slavery)로 흔히 소개된다. 12시간 교대(twelve-hour shifts)에 쉬는 날은 거의 없이 목숨을 내놓고(risk their necks) 일해야 한다.
이런 '해외 노예'도 상당한 뇌물을 주지 않고는(without paying a large bribe) 될 수 없다. 시베리아 벌목공은 약 400달러(46만원), 중동으로 가려면 훨씬 더 비싸다(be even more expensive). 러시아에 3년 다녀와도 3000~ 5000달러를 벌어 가족 생계를 이어갈(earn their family's living) 가게를 열 수 있다.
원양어선 선원도 근무 조건은 열악하다. 하지만 북한과 외부 세계 간의 소매가격 차이를 이용해(make use of the difference in retail prices) 큰돈을 번다(rake in the money). 한약재(medicinal herbs), 해산물(seafood) 등을 비싸게 내다 팔고, 가전제품(consumer electronics)과 의류(garments) 등을 들여와 몇 배를 받고 판다. 거의 모든 소비재(mostly any and all kinds of consumer goods)를 거래한다.
배급제(public distribut
ion system) 시절 최고 직업은 국영상점 판매원(sales clerk of state-run shop)이었다. 점장은 '신의 직장'이었다. 배급품을 빼돌려 부풀린 가격에 되팔아(resell them at inflated prices) 뒷돈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꿈의 직업'이 운전기사·선원·해외 근로자로 바뀐 것은 그나마 시대가 변한 결과다.